고르바초프를 향한 늙은 할머니의 저주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by kseniya

상원이는 수업을 같이 듣는 클래스 메이트였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에 오게 된 아이였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성격이 다혈질이었다. 같이 다니는 무리 중에 성격이 강해서 눈에 띄던 아이였다.

상원이에게는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한국서 개척교회를 위해 가족과 함께 러시아에 들어왔다가 혼자만 남고 나머지 가족들은 한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올야네 집에서 나오기로 결심한 나는 , 방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어디부터 알아봐야 할지 난감했다.

상원이랑 같이 다니는 아이들은 아버지의 사업차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쪽 하고는 단절된 나의 상황 하고는 달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에게 정보를 좀 얻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 중학교 시절부터 이 곳으로 와서 가족들이 떠난 후, 혼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신의 여자 친구인 마리나를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상원이 말로는 조만간 마리나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거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마리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아파트에서 방 하나를 얻어서 살고 있었다.. 마리나와 친해지고 나서 그 집을 몇 번 왔다 간 적 있었는데, 포근하게 생긴 주인집 할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렇게 친해지게 된 카츄사 할머니... 그러나 마리나랑은 같이 살면서 아마도 깊은 갈등의 골이 생긴 거 같았다. 자신의 영역에 남을 들인다는 것은 역시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지라도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사샤는 그런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올야네 집에서 지내기가 힘들 것 같은 나에게 자기 집에 와서 지내도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가는 날이면 인나와 방을 두 개로 나누어 쓰고 있었는데,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자신은 거실 밖 소파에서 잤다. 새벽 일찍 일을 나가는 날이면 혹시라도 집안이 추울까 봐, 페치카에 석탄을 넉넉히 넣어 집안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놓고 나가곤 했다.

사실 인나 역시 내가 온 후부터 신경을 많이 쓰느라고 그리 걱정하지도 않아도 되었는데,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아무 말없이 감싸주고 있었다. 올야는 냉정했지만, 사샤는 직설적인 말투 속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카츄사 할머니는 그 당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엄청 많았다.

러시아를 자본주의 사회로 팔아넘긴 장본인이라면서 자기가 총이라도 있으면, 고르바초프를 죽여 버릴 거라고 서슴없이 말을 했다. 언론의 자유라고는 없던 서슬 퍼런 소련의 삶에 익숙하던, 노인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전 지도자의 욕설에 너무나 놀랬었다. 저렇게 지도자의 욕을 되놓고 해도 되는 건가? 그때만 해도 현직 정부를 비판하는 저널리스트가 암살을 당했었다. 그는 국민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언론인이었다.

올야는 티브이에 나오는 그의 장례식을 보면서 아까운 사람이 죽었다고 분명 정적인 정부로부터 독살당한 거라고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츄사 할머니의 거침없는 욕설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서방에서의 환영을 받는 것과는 다르게 고르바쵸프는 자국 국민들에게는 좋은 리더가 아니었다. 그 당시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보면 어차피 구소련은 해체될 운명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고르바쵸프의 섣부른 경제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80년간의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이념이 옳든 아니든, 그들 체제의 익숙함은 급작스럽게 밀려들어온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기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발 빠른 자와 느린 자의 격차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혼란은 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섣부르게 강행한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실패했다.

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면서 그들에게 믿었던 공평하고 안정된 사회는 무너졌다.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계층이 , 젊은 날의 일정한 노동에 대한 대가로 보장받는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들과, 나라를 위한 대가로 목숨 값을 보장받았던 가장 안전한 신분이였던 군인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더 이상 순진하고 게으른 자의 세상이 아니었다. 연금은 미루어지기 시작했고, 많지도 않은 돈이었던 그 마저도 받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최소한의 생계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든 국가적 뒷받침인 사회적 복지제도 또한 무너지기 시작했다.

카츄사 할머니의 의미 있는 넋두리였다.


또한, 그는 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채 러시아의 보드카 판매와 소비를 통제하면서 경제적인 붕괴와 더불어 국민들의 원성을 사게 된 것이었다.

러시아의 보드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례로 사샤는 밀린 월급이 나오기 시작하면 보드카부터 사다가 쟁여 놓는다. 그것도 시간을 잘 맞춰 보드카가 시장에 물량이 나올 때를 잘 맞춰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늦어 버리면 보드카는 동이 났다.

오죽하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니, 그 당시 신문에 나온 기사였는데, 공업용 알코올로 보드카를 몰래 주조해서 가짜 보드카를 팔다가 많은 사람이 죽은 기사였다.


사샤는 보드카를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대했다. 새로운 보드카가 나오면 제한된 수량을 사다가, 자신의 방 깊숙한 장롱에 넣어 넣고 그것도 모자라 열쇠로 채워 놓았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웃음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술이 뭐길래....

하지만 그들에겐 술은 인생이었다. 내가 비웃을 수 없는....

월급의 상당 부분을 보드카를 사는데 소비하는 것이었다. 그 술을 소비하는데 나도 일정 부분 기여하긴 했지만..


보드카는 추운 겨울에 단조롭고 고단한 그들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낙이였지만, 추운 겨울과 술의 완벽한 조화로 남자들은 40대에 가장 많은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주원인이 되었고 , 그들의 죽음으로 많은 과부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다. 일하지 않는 백수들도 러시아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러시아는 남자들이 귀했다. 수많은 전쟁에서 남자들이 죽어나갔고 , 남자들이 일해야 하는 일터에 여자들이 나서야 했다.



카츄사 할머니의 마리나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시도 때도 없이 늦게 들어오는 그녀의 불규칙한 귀가였다.

일찍 잠드는 할머니와 혈기왕성한 잠 없는 이국의 소녀와의 갈등은 꽤 깊어 보였지만 , 할머니의 삶의 주요한 경제 수단인 마리나를 내쫓기도 힘들었을 터인데, 그 이유가 나와 마리나의 같은 목표가 될 줄이야....


결국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늦게 다니는 불편함이, 같이 사는 룸메이트에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실감하기도 전에 , 마리나와 같이 아파트를 구해서 나갈 수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항상 후회는 지나고 나서 하는 거라더니....


그 순간 나는 책상머리에서 배우는 그들의 언어보다 가슴으로 직접 느끼는,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인생에 영향을 미칠 세상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인생은 결코 헛된 순간이 없었다. 나에게 피해가 오든 어떤 경험으로라도 깨달음을 주었다.

올야라는 산을 넘으니 마리나라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