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걸치고 갈 머플러를 찾느라 한국에서 가져온 가방을 뒤져도 이 곳 저곳을 찾아봐도 머플러가 없다.
이상하다. 분명히 아버지가 보내준 그대로 만지지도 않았는데.... 한 번 씩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면 겨울에 필요한 물건이나 옷들을 보내주는데, 항상 같은걸 두 개를 보내주었다. 하나는 올야 것, 하나는 내 것.
내가 연희 언니의 고마움을 얘기할 때도 아버진 예쁜 색색의 실로 뜬 베레모를 두 개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 베레모를 언니와 같이 쓰고 수업에 들어온 적 있었는데, 둘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은 적도 있었다. 그때 언니는 참 좋은 아버지를 뒀다며, 일찍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곤 했었다.
하나는 분명히 올야를 주고, 나머지 내 거는 그대로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사라진 것이었다.
"언니, 혹시 내 머플러 못 봤어"
틈만 나면 바닥을 닦고 있는 올야는 내 얼굴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내가 니걸 어찌 아니?"
모른다는 얘기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어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머플러 없이 학교를 가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서둘러 밖을 나왔다. 봄이 다가오려는 시베리아의 날씨는 아직도 살을 에이는 날씨지만 , 집안의 무겁고 답답한 공기보다는 밖이 훨씬 시원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언제부턴가 올야의 행동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아무리 당당한 나였지만 남의 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은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어, 나름대로 조심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학교를 갔다 오면, 침대의 이불을 다시 정리를 하고 나가는 올야를 보면서 내 마음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내 가방의 물건이 하나둘씩 없어진 것도 이 시기였던 거 같다.
누가 보면 올야가 오갈 데 없는 머리 검은 짐승을 걷어 먹이는 줄 아는 꼴이다.
언젠부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서 끼니 해결을 해야 할 때도 눈치가 보여, 내가 가지고 온 라면이나 밀가루로 반죽으로 할 수 있는 수제비 같은 걸 끓여먹었다.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처음과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올야는 창고에 쌇인 밀가루나 쌀들을 보여 주면서 마음대로 해 먹으라고 말을 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대로라는 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날수록 가급적 점심도 밖에서 반 친구들과 가볍게 해결하고, 저녁도 가끔 상점에 들려 생선 종류를 사서 생선조림을 해 놓으면 올야는 잘 먹긴 했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올야가 무엇 때문인지 도통 짐작이 안 가다가도 혹시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설마 했지만 사람의 이기심이란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지게 마련이 아닌가?
러시아에 도착한 첫날, 분명 나는 올야 언니에게 아버지가 전해 주라는 봉투를 분명히 건네주었다. 그 속엔 나의 학비와 생활비가 들어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공돈으로 딸을 부탁할 사람도 아니지만, 그 속에서 딸이 기죽을 상황도 만들지 않았을 사람인데.... 집을 살만큼 넉넉하게 돈을 넣어주진 않았겠지만, 거저 자신의 딸을 맡기지는 않았을 텐데... 의심은 들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마음속에만 묻어온지가 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나는 이 집이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돼도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될 수 있으면 올야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이미 성인이다. 나에게 닥친 일은 내가 해결해야 할 나이였고, 포기하느냐 남느냐도 내가 결정할 문제였다. 기회는 남의 도움으로 주어지지만 , 그 기회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나 자신의 결단만이 가능한 거였다. 서럽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나갈 데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서럽다고 보드카만 나발을 불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단단했던 겨울의 추위를 녹이듯이, 그 봄은 다시 여름이라는 화려한 결실을 주지 않던가?
나의 지금 인생도 겨울을 지나 봄이 오려고 하고 있는데 이까짓 시련쯤이야... 이런 나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눈에는 서러움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연의 날씨는 서서히 봄을 알리기 위해 6개월 동안 꼼짝 안 하고 한 곳에 머물러 있던 눈이 녹기 시작하는데, 나의 상황은 갈등의 골이 더욱 더 깊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나의 참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언니!! 혹시 우리 아버지가 내 학비랑 생활비 주지 않았어?"
올야의 언니의 대답이 가관이다...
"그깟 돈 얼마나 된다고?" 다시 가져가란다.... 하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올야의 가려진 진심을 알고 나니 허탈했다.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 돈에 대한 관념이 없었던 나보다 더 자본주의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올야 언니...
존경해야 하나 경멸해야 하나.....
그 이후 나는 입을 닫았고 , 올야의 집안은 갈수록 냉랭한 기류만 흘렀다.
이런 사정을 안 연희 언니는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말해주었지만 하루 이틀이지....
사샤 집으로 가니 걱정스러운 듯 물어본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재는 게 편이라고 내 말을 들어주기나 할까 싶었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언젠가 사샤가 올야네 집에 들렀을 때, 올야는 항상 그렇게 바닥을 닦는다. 닦아도 티도 안 나는 그 집을.... 올야가 걸레질을 할 때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사샤가 퉁스럽게 말한 적이 있었다.
너는 가만히 앉아서 뭐하냐고,,,, 그 말 뜻이 뭔지 몰라 가볍게 농으로 지나갔는데 ,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 뜻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었다.
내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사샤는 왜 그러는지 다그쳤다. 무슨 일이냐고....
사샤는 가까이 사는 가쨔 언니를 불렀고 , 셋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러시아에서 마신 보드카 덕에 위가 펑크가 나서 그 이후에 술이 약해져서 지금은 맥주만 마신다 , 그것도 고작 한병... 기분 좋으면 두 병.
무색무취의 보드카를 부어라 마셔라.. 술이 떨어지자 겨울철에 비축해 두었던 과일주까지 나온다. 옆집 워와 아저씨 또 술이 떡이 돼서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샤나 가짜의 반응이 의외다. 까마득히 몰랐었단다. 자기들은 올야 언니가 공짜로 나를 데려다가 돌봐주는 줄 알았단다. 돈을 받은 거에 대해선 자기네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사샤는 나보다 더 화를 냈다. 어떻게 같은 친척끼리 돈을 받을 수가 있느냐고.... 실제로도 사샤는 그날 이후 올야를 약간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긴 했었다.
그런 내가 측은했는지 사샤는 그 날 이후 나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가짜도 거들었다.
언니가 그럴 줄 몰랐다고.....
며칠 후, 엄마를 보러 온 올야의 둘째 딸 따냐의 목에 당당하게 둘러져 있던 머플러를 보는 순간, 나는 독립할 결심을 굳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