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로
결혼 후 3개월간 남편의 요리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요리라고는 만두를 찌고, 소시지 굽는 조리 실력을 가지고 있던 남편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요리왕 비룡처럼 뚝딱뚝딱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시기였다.(심지어 유린기까지도..) 그리고 이사하고 시험관을 돌입하기 이전에 술 역시 원 없이 마시던 시기였다. 그 결과 우리는 약 10kg 정도 살이 쪘다.
살도 뺄 겸, 남편의 결혼 전 로망인 ‘함께 운동하기’ 실현을 위해 집 주변 운동할 곳을 찾았다. 운동의 목표는 두 가지다.
1. 체중 감량
2. 거북이 목인 우리이기에 어깨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자세 교정을 위한 운동일 것
먼저 가격대가 괜찮은 요가센터는 이미 회원들이 많아서 몇 개월은 기다려야 자리가 날 것 같다 했다. 시골이어서 요가 전문 센터가 한 군데밖에 없었고, 가격이 비싸지만 필라테스로 결정했다. 필라테스 센터는 여러 군데가 있었는데 다음의 조건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았다
1. 남성 회원도 많은지? 나에게 사정이 생겨 남편 혼자 운동하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친남성회원 분위기 혹은 남성 회원이 많은지(후에 알았지만 남편은 내가 없어도 여성 회원들 틈에서 어색함 없이 운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2. 운동 중간 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홀딩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수 있는 곳
3. 걸어서 혹은 차로 10분 이내일 것
남편과 밤산책 중 발견한 필라테스 센터 A는 통창에 노란 조명을 하여 운동하는 모습이 밖에서 보여 인상 깊은 곳이었다. 산책하다 바로 마음에 들어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8시 가까운 시간이었고, 수업 중이어서 우리에게 기다려달라 했다. 밖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안에서의 인테리어는 별로였다. 커튼이나 소파에 있는 인테리어가 조잡해 보였고, 수업이 끝나서 상담하던 와중에 센터 사람들끼리 오래 해서 친한 건지 엄청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남편과 나 모두 그렇게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금세 상담을 끝내고 나왔다. 다음 센터를 어디로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주저하며 필라테스 센터 B를 주저하며 말했다. 본인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먼저 말하지 않은 것은 이곳이 다른 센터에 비하여 가격대가 높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을 선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일단 가보자고 했고, 상담 후 바로 결제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남녀 혼성반 시간이 따로 있음. 요일은 월수금 고정 21시이고, 원하면 미리 시간을 고정적으로 예약해 주겠다고 했다. 이미 이 시간에 함께 운동하는 커플이 있다고 했다.
2. 운동 기간 중간 임신을 하면, 안정기가 된 후 임신 프로그램 운동을 따로 진행해 주겠다 했다.
3. 집에서 걸어서 10분이었다.
4. 심지어 상담 중인 필라테스 강사 선생님이 본인도 임신 14주 차?(확실하지 않다.)라고 했다.
이럴 수가. 이것은 데스티니!! 내가 원하는 조건 모두 충족하다니 좋았다. ‘시골이라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이 쌀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와 달리, 대부분의 물가는 오히려 도시에 비해 비싼 편이다. 경쟁이 적기 때문에 가격에 따른 경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필라테스 센터에 비해 가격대가 높았지만 센터 안의 분위기가 조잡하지 않은 분위기에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로 결제하고, 수금 9시 고정으로 예약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남편과 운동을 함께 시작했다. 준비운동을 하면 오직 앞만 바라보고 집중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운동을 하며 중간중간 나를 쳐다보았는데 아주 가관이라고 했다. 내가 운동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표정은 거의 국가대표 얼굴인 것이 너무 웃기다 했다. 운동하고 땀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에 가는 그 길이 참 포근하니 좋았다. 그래서 생각보다 살은 빼지 못했다는.... 그렇게 한 달 정도 남편과 운동을 하고 난 임신을 했다. 중간중간 친정 근처 난임병원을 다니면서 빠져서 실상 함께 운동한 건 2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생리를 하지 않는 것에 “혹시? 혹시? 나 임신?”이럴때마다 남편은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내 가슴을 보더니 인정했다. 부풀어 오른 가슴은 생리 전에 가슴이 커지고 몽우리 지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일단 유두가 스칠 때마다 아파왔고 가슴모양 자체가 달라졌다. 그런데도 얼리 테스트기를 할 때마다 한 줄이 나왔다. 가슴통증과 두통으로 너무 아프던 날 남편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사다 달라했고, 그때 두줄이 나왔다. 혹시 몰라 시간차를 두고 2개를 더해보았고 확신의 2줄이 3개 연속 테스트기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는 임신을 확신했다. 임신 카페와 블로그에서 임테기에 두줄이 나와도 바로 병원에 가지 말라했다. 2주 정도는 더 있어야 아기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산부인과에 가라는 말이 있어서 친정과 시가에게도 임신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운동은 쉬어야 했기 때문에 나의 임신을 필라테스 센터가 먼저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남편 혼자 운동을 갔다. 남편은 기쁨이(태명)가 우리에게 온 것은 좋지만 정작 함께 운동한 시기가 짧은 것은 아쉽다면서 시무룩하게 운동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오늘 운동은 힘들었어. 혹은 오늘은 수월했다.”라는 평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무나 운동하고 싶다고 했다.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 하기에 스트레칭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몸은 찌뿌둥하고, 두통은 심각하게 있고, 점차 몸이 불어나는 것만 같아서 그게 힘들었다. 유산의 70% 정도는 초기에 이루어진다 하니 어서 안정기가 되어 필라테스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화창해서 더 슬픈 어느 날, 나는 유산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유산한 사실도 양가 부모님보다 필라테스 센터가 먼저 알았다. 유산을 시작한 날(자연유산이라 하혈기간이 2주 정도 되었다.) 엄마는 해외여행을 갔고, 나는 유산 사실을 알리기보다 어차피 알게 될 거 엄마라도 즐겁게 여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비밀로 했다. 중간중간 카톡으로 컨디션 괜찮냐고 묻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기쁨이는 더 이상 나에게 없는데 ㅜㅜ). 몸도 마음도 아파 통화하면 울 것만 같아서... 시가에도 남편이 전화를 해서 나중에 알렸다.
남편이 나의 유산을 필라테스 센터에 알렸고, 한 달 정도 후에 컨디션이 괜찮으면 나에게 나와도 좋다고 했다. 다시 남편과 운동하러 센터에 갔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색했다. 마지막 운동을 했던 나와 유산 후 운동을 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한때 엄마였던 나는, 길을 걸을 때도 아직 부르지 않은 배를 만지며 걸었던 나는, 화초에 물을 주며 “기쁨아 날씨 좋지?.”라고 대화했던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다. 걱정이 무색하게, 그냥 평상시처럼 운동을 했다. 그저 오랜만에 운동하고, 아직 손목과 관절이 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세를 더 신경 써서 봐준 정도였다. 임신 중기였던 필라테스 강사샘의 배도 많이 나왔다. 처음 운동할 때는 임신했나? 이 정도였다면 이제는 확연하게 임신부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부른 배를 보며 부럽다 생각했다. 남편이 나를 신경 쓰는 게 느껴졌다. 유산 후 한동안 아기가 나오는 매체를 볼 수 없었다. 광고에 아기가 나오면 남편을 불러 채널을 바꿔달라 했다. 길을 가도 유모차가 있으면 돌아가던 나였다. 첫 수업이 그녀여서 다른 강사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비록 나는 중도 하차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무사하게 출산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운동했다. 그렇게 남편과 한두 번 운동하여 적응기를 갖고, 남편이 야근하는 날 나 홀로 다음 운동을 11시에 예약했다.
미리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10시 50분에 센터에 도착했다. 오늘도 임신한 강사샘이다. 강사샘이 “오늘은 회원님 혼자여서 개인운동실에서 함께 운동하시죠.”라고 했다. 그리고 사진도 찍어준다고 했다. 립스틱을 바르고 와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사진도 찍어줄까 의심했다. 이전 다른 곳에서 1대 1 필라테스를 할 때 내 자세를 동영상으로 찍어도 되냐고 해서 곤란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자세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찍는 것에 동의했는데, 블로그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거절했다. 이전의 기억 때문에 나는 혹시나 내 사진을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리는 건 아닌지 의심 먼저 했다. 강사샘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바렐을 할 때는 부른 배를 잡고 자세를 알려주었다. 크롭 민소매를 입은 그녀의 검붉은 겨드랑이와 부른 배의 임신선을 보았다. 나도 원래라면 몇 개월 뒤에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런 그녀의 자세를 따라 하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며 운동을 했다. 웨딩 촬영할 때조차도 멍 때리고 있다가 카메라 샘의 “신부님!! 왜 그런 표정하고 있으세요?”란 말을 들었던 나는 그냥 대충 하지 란 생각을 가졌다. 사진 속 나는 불과 몇 개월 전 결혼할 때 비쩍 말라있던 나와 달리 퉁퉁 불어있었다. 팔뚝 살도, 얼굴도, 그리고 복부도 아주 토실토실해 있었다. 임신주수에 비해 발달이 더디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덜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남편과 나는 하루빨리 아이 심장소리가 듣고 싶다는 생각에 매 끼니 소고기, 돼지고기 파티를 했기 때문이다. 유산했을 때는 몸조리한다고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었다. 그런 내가 사진을 찍어도 만족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1대 1 필라테스 때도 하지 못했던 인스타 속 연예인들 단골 필라테스 자세도 해보면서 즐겁게 운동했다. 오랜만에 집중하면서 운동했다. 생각보다 운동 자세가 힘들어서 딴생각이 들 틈도 없었다.
운동이 끝나고, 그녀는 나에게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SNS에 올려보라던가, 남편분께 보여주라는 말만 했다. 50장 가까운 사진이 내 폰에 담겼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고마웠다. 물론 다른 회원에게도 제공하는 서비스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유산을 말했을 때 다양한 위로의 말을 들었다. “몸은 괜찮냐?”라거나 전화해서 나 대신 울어주거나.. 내 삶의 서사를 아는 이에게 받는 위로도 좋지만, 어떨 때는 덜 가까운 이에게 받는 무심한 듯한 위로도 참 좋다. 그렇게 그녀와 3개월 정도 운동을 한 뒤 어느 때부터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부른 배를 보며 출산 임박을 예상했는데 동료 강사로부터 그녀의 출산 소식을 들었다. 물론 내가 물어보지 않고, 다른 회원이 물은 답으로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진통 끝에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건너들은 말이어서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무사히 출산한 그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고마웠다고.. 출산부터 또 다른 시작이라 말하지만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준비운동을 하며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