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하찮은 존재
작년 11월부터 시작한 나의 늪은 올해 2월쯤에야 끝났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고, 누군가 나를 구해주고 싶어도 어려운 그런 상황이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시험관을 시작하면 익히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과배란 주사를 맞고, 난자를 채취하며 배아를 이식하는 일련의 과정을 바로 가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난자를 최대한 많이 채취하기 위해서는 난포가 일정한 크기로 자라는 것이 중요한데, 나의 난포 중 성장 속도가 빠른 게 있었다. (난포가 터지면 난자가 배출된다.)
그래서 나의 난포 성장 속도를 일정하게 하기 위해 피임약 처방을 받았다. 그때는 몰랐다. 고작 82 밀리그램 피임약이 나를 변화시킬 줄은.
거의 2달간 피임약을 먹으면서 나는 변해갔다. 감정 기복이 없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남편의 뒤통수만 봐도 짜증이 나고, 함께 밥 먹는 것도 싫고, 그가 웃는 것도 싫었다. 문제는 남편도 11-12월이 제일 피크로 일이 몰리는 시기라는데 있다. 피곤해서 집에서 드라마나 스포츠를 보는 것뿐인데, 나는 알면서도 그를 궁지에 몰아갔다.
“임신, 육아에 대한 공부는 했어? 나만 임신을 원하는 거야? 자기는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이럴 거면 차라리 ….”
뒷말은 하지 않았다. 호르몬 때문에 눈깔이 돌아버린 순간에도 옳고 그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질고, 아프고, 나쁜 말을 쏟아내면 잠을 잘 잤다. 남편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난 불면을 치유하고 코를 골며 잘만 잤다.
다음날 아침 비몽사몽한 나에게, 인사를 하며 출근하는 남편의 다크서클과 내 기분을 파악하려 긴장하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가졌다. ‘내가 힘드니까 같이 힘들자…’
사랑한다고 함부로 할 수 있나? 감히 어느 누가 한 존재에게 함부로 할 수 있나? 그러나 난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내 남편에게 함부로 하고, 나의 막된 행동을 정당화했으며, 같이 나의 늪에 들어오는 남편이 반가웠다.
남편이 어느 날 말했다. “집에 오는 길이 무겁고, 집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자신이 어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라고
왜 모르겠는가? 누군가 우릴 본다면, 누가 봐도 우린 불행해 보인다 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말했다.
“세상이 나 빼고 빠르게 돌아가고, 나만 제자리에 있고 나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힘들다고, 벌써 1년 휴직했고, 앞으로 아이를 가지면 1-2년을 쉬게 되는데 내 인생은? 나도 소중하다고.
물론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나의 불안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남편과 임신, 육아 유튜브를 보며 공부하며 시뮬레이션을 하니, 불안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그리고 시험관을 위한 과정을 시작하면서 공포의 주사는 시작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참 하찮다. 나를 하찮게 만든 것은 피임약 한 알일까? 아니면 나의 불안일까?
살아간다는 건 하찮은 나라도 괜찮다고 수용하고, 예뻐하는 과정이다. 내가 세상의 전부이고 주인공이던 청소년기, 20대를 지나 주인공은커녕 아주 낮은 존재라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걸 깨닫기 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책과 미움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요즘 들어 이런 불안을 받아들이고, 하찮은 나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더욱 가능하게 된 이유는 때로 별것 아닌 주장일지라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한겨울 코 풀다 딱지 찌꺼기가 숨 쉴 때마다 보여도, 귀엽다 하며 떼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멋있는 척, 지적인 척, 깔끔한 척하던 남녀가 만나 때로 상대에게 가장 타격감 있는 방식으로 싸우고 지지고 볶다가 눈이 마주쳐 고춧가루 낀 채로 웃는 것이 결혼 생활이 아닌가 싶다.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을 것을 아는 어린아이처럼 나의 하찮은 모습마저 보여도 괜찮은 존재, 그런 존재가 나의 남편이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집에 돌아오면 주인공이 되어 멜로, 코믹, 때로 스릴러가 있는 우리 집이 좋다.
또다시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나답지 않은 나 자신이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그에게 안식처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