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애끓는 감정이라니
얼마 전 부모님이 집에 왔다 가셨다. 항상 가볍게 오시라고 말씀드리지만(물론 반찬은 환영한다.) 이번에도 한 보따리 가져오셨다. 우리 부부는 말로는 “뭘 힘들게 가져오셨어요.”라고 하지만 잇몸 만개와 광대 씰룩으로 무언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본가로 떠나기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는 흰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앞으로 시험관 하려면 병원 자주 다녀야 할 텐데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했다. 나는 화가 났다. 이미 많이 받았는데 또 챙겨주는 마음에 헤어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는 봉투를 주고, 나는 받지 않겠다고 몸싸움을 벌였다.
돈이 웬수다. 휴직한 나의 얄팍한 지갑이 자존심과 체면을 이겼다. 몸싸움 때문에 구겨진 봉투를 잡은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마음을 다잡느라 힘들었다. 안구건조증이라 다행이다.
엄마는 왜 이렇게 나를 안쓰러워하고 더 챙겨주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다. 자식 낳은 게 무슨 죄라고.
남편과 나는 결혼할 때 양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대신 축의금은 우리가 갖기로 했다. 이것도 도움이지만 그 이외는 받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사업할 때 네가 결혼하면 손님이 더 많았을 텐데… 그럼 너희들한테도 도움이 되고…”라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됐어. 이미 충분히 받았어 엄마. 학자금 대출받지 않고 학교 다닌 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말했다. 40대에도 대출받는 것은 두려운데 20대에는 어땠을까 싶다. 친구들이 과외나 알바하느라 바빴던 시기에 나는 해맑게 돈걱정 없이 놀았다. 부모님은 나의 20대를 지켜주었다.
20대뿐인가, 철딱서니 없는 딸의 30대 역시 지켜주었다. 그런 부모님께 나는 말했다.
“앞으로 나 결혼하고 아기 낳고 하면 내 가정 지키기도 어려울 거야. 엄마 아빠한테 도움 못줘. 그러니까 나한테 해주려고도 남겨주려고도 하지 말고, 엄마 아빠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쓰고 싶은 것 다 쓰셔.”
나는 내 부모님의 노후를 지켜주지 못한다. 보답받지 못하는 짝사랑을 내 부모님은 나한테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난 되돌려주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을 가진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연애할 때도 해본 적 없는 짝사랑을 이미 난 시작했다. 그것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에게.
내 나이 마흔, 지금도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하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데 앞으로 태어날 내 자식이 40대일 때 난 80대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유병 장수의 시대에 내 자식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시험관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자식을 낳고 싶은가. 그냥 내 욕심이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 건강하지도, 부유하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내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에게 벌써부터 미안하고, 사랑에 빠지고 애끓는 마음이 든다.
내 자식에게 부모라는 존재가 필요할 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그런 마음들이 애간장을 녹인다.
신혼여행 후 고등학교 친구들과 평양냉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친구가 내 결혼식 후기를 들려주어 지하철에서 또다시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신부입장하고 사위에게 네 손을 인도하고 홀로 돌아오는 아버님 표정이 참 쓸쓸해 보이더라. 아마 내 아빠도 내가 결혼할 때 그런 표정이었겠지?“
그래 난 10년 전에 봤다. 쓸쓸한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던 친구 아버님의 깡마른 어깨를.
친구를 빼앗기는 것만 같아 “왜 이렇게 일찍 결혼하냐고, 30이 얼마나 좋은 나이인데.”라고 말했던 나인데, 친구의 부모님이야 더했겠지.
비혼주의자였던 나에게 결혼식은 타자들의 이벤트였다. 친한 친구들이 결혼할 때 이외에는 당사자를 축하하는 마음 이외에 나의 감정을 흔드는 순간은 없었다. (회수할 수 없는 축의금에 대한 슬픔 정도?)
그래서 조선시대처럼 ‘출가외인’ 이런 것도 아니고 계속 만날 건데, 왜 그렇게 30여분의 이벤트에 온 가족의 기쁨, 슬픔, 등등의 감정이 함께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결혼식은 생각보다 나란 사람을 다른 존재로 만든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부모님께 독립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일종의 선언과 같은 거다.
남편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여 마냥 헛헛한 마음에 친정에 가고 싶던 날이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네비를 켠 후, 2시간 30분 후 도착예정이라는 것을 보고 조용히 차 시동을 끈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나 결혼했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빨간 통화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한숨 쉬며 핸드폰을 끈 그날 나는 부모님께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