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빵도 커피도 비켜갔다
광복절 연휴 첫날, 아침 6시 30분.
“이 시간에 출발하면 안 막히겠지!"
순진한 믿음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강릉 가는 길은 이미 우리 같은 순진한 영혼들로 가득했다.
2시간 반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여정은 여섯 시간이 되어버렸다.
차 안은 한숨과 투덜거림으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도 이야깃거리가 피어났다.
결국 웃음으로 마무리된 순간들은, 훗날 다시 꺼내 웃게 될 추억이 되었다.
겨우 도착한 강릉.
미리 찜해둔 식당들은 하나같이 끝없는 대기 줄로 우리를 맞았다.
결국 선택한 곳은, "주차만 되면 다 용서된다"는 기준으로 들어간 식당.
맛은? 차라리 침묵은 금이다.
"여기 아니면 굶어야 하니까."
서로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유명 팥빵집은 이미 솔드아웃.
아침에 구운 빵이 오픈 두 시간 만에 전설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던 그 설렘을 떠올리며 달려왔지만, 운명은 또 우리를 비껴갔다.
남은 건 팥앙금 없는 허무함과 한숨 한 바가지뿐.
다음은 강릉 안목해변에 있는 카페거리에 기대를 걸었지만, 카페거리 주변은 많은 사람들로 혼잡했고 모든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결국은 빙빙 돌다 포기하고 다른 해변으로 향했다.
커피 보는 '안목'만큼은 자신 있었건만,
그곳에서 마신 커피는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커피가 너무 써서 도저히 못 마시겠어요.'
직원은 태연히 말했다.
"원래 저희 원두가 써요."
"하..." 말문이 막혔다.
커피빈은 원래 쓰다.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법 아닌가?
그날의 커피는 단순한 쓴맛이 아니라, 오늘 여행의 쓴맛 같았다.
길 가다 만난 옥수수 천막집.
"드디어!"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그 순간, 앞사람이 우리와 스쳤다.
입가엔 묘한 미소.
미안함? 뿌듯함? 아니면 살짝 비웃음?
딱 보물 독차지한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마지막 옥수수를 그가 쓸어 담았다는 걸.
이상하게도 앞사람의 발걸음이 유난히 빨라 보였다.
정말 빨랐던 걸까, 아니면 우리 마음이 괜히 그렇게 느낀 걸까.
아쉬움이 사람 눈까지 왜곡하는 순간이었다.
"아, 지난번 괴산에서 산 옥수수라도 쪄서 가져올 걸 그랬나?"
"아니, 누가 강원도 오면서 그 흔한 찰옥수수 하나 못 먹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냐."
달콤한 한 입이 그렇게 소중할 줄이야.
우린 침만 꿀꺽 삼켰다.
위로를 찾아 들어간 젤라토집.
한 입에 퍼지는 달콤한 행복.
그런데 달콤함 뒤엔 묘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고,
막국수까지 먹고 나니 소화불량이 뒤따랐다.
해변은 다섯 곳이나 돌았다.
그중 정동진.
예전엔 소나무 한 그루가 랜드마크였는데,
이젠 소나무가 너무 많아 길을 헤맸다.
현대적인 (?) 감성으로 단장된 모습도 나쁘진 않았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옛 모습 그대로의 소박하고 투박함이 더 아름다웠을 텐데.
아무리 새로운 것이 좋다는 시대라도,
가끔은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
드라마 속 풍경처럼, 그때 그 모습으로 남겨두었더라면
더 많은 기억과 이야기가 머물렀을 텐데.
그래도 푸른 바다는 에메랄드처럼 빛났고,
갈대는 바람에 속삭이며 여행의 아쉬움을 감싸주었다.
돌아오는 길은 거짓말처럼 뚫려 있었다.
아침의 여섯 시간 고난이 무색하게,
집까지 두 시간 사십 분.
도착하자 모두 멀쩡해졌지만,
장시간 운전한 남편만은 살짝 지쳐 보였다.
강릉에서 찰옥수수는 못 먹고,
초당순두부 거리에서는 가짜 순두부를 먹었고,
최악의 커피를 마셨다.
제주도에서 만난 팥빵집을 여기서도 놓쳤고,
팥을 향한 우리의 사랑만 허공에 떠돌았다.
젤라토는 달콤했지만,
뒤를 잇는 막국수는 속을 더부룩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진의 바다와 갈대가 마음을 어루만졌다.
결국 이 모든 게 웃음거리로 남아,
차 안에서 꺼내 웃을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가족이 함께였고,
강원도의 바람이 부드럽게 감싸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그 사이로 스며든 바람은 가을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줬다.
뜻대로 된 건 하나 없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오히려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았다.
경치와 느낌, 작은 해프닝들까지 더해져
이번 여행은 오래도록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결국 강릉에서 확인한 건 커피 맛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여행 안목이었다.
불평하다가도 결국 추억으로 바꾸는 능력 말이다.
다만, 우리의 안목이 너무 좋아서… 결국 남들 다 가는 '핫한 곳'만 열심히 찾아다녔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웃으며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결론은?
연휴에 여행 가느니, 집에서 뒹구는 게 진짜 힐링이다.
그럼에도, 이런 소동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라면
작은 실수와 허탕마저도 달콤한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