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하루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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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다. 햇살 가득한 해변과 영화 속 할리우드의 반짝임만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데스밸리에서 마모스 산(Mammoth Mountain)으로 향하는 길, 불과 2~3시간 운전했을 뿐인데 창밖은 계절별로 갈아입는 패션쇼를 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내 차창을 스쳐갔다.
처음에는 연둣빛 새싹이 움트는 들판이 펼쳐졌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풀잎과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봄의 냄새를 전했다. 잠시 후 창밖은 사막으로 바뀌었다. 끝없이 이어진 황금빛 모래 언덕과 뿌연 열기로 떨리는 지평선. 그 위로 뜨거운 태양이 내려앉아 차 안까지 달궜다. 낮 기온은 화씨 100도 가까이 치솟았다.
그 길을 달리다 보니 풍경은 또다시 변했다. 도로 양옆으로 알록달록 물든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붉은빛, 노란빛, 주황빛이 층층이 물결을 이루며 가을을 수놓았다. 그 사이로 저 멀리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들판에는 검은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그 뒤로는 웅장한 산맥이 거대한 벽처럼 솟아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그림처럼 고요하고 완벽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근처 맥도널드에 들러 햄버거를 먹었다. 소들이 풀을 뜯는 들판을 바라보며 먹는 흔한 햄버거의 맛은 묘하게 특별했다. 이 풍경 속에서는 그것조차 여행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산자락에 들어서자 키가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나무줄기는 내 팔로는 도저히 감쌀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웠다. 아니, 딸과 내가 둘이서 팔을 벌려 안아도 전혀 닿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 풍경은 마치 오래된 성벽 같았다.
길 위에는 차 한 대도 없었다. 마치 우리가 숲을 통째로 전세 낸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넓은 도로 위를 마음껏 달렸다.
"하나, 둘, 셋!"신호를 맞추자 딸이 번개처럼 뛰기 시작했고, 나는 뒤에서 헉헉대며 따라갔다. 발자국 소리가 숲 속에 메아리쳤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춰 서면, 딸은 뒤를 돌아보며 깔깔 웃었다.
"여기서 한 시간은 뛰어도 차 안 올 것 같아!"
"그럼 네가 먼저 가서 차 오는지 좀 봐봐!"
딸은 다시 달려갔고, 나는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 순간이 그 어떤 놀이공원보다도 신난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건 겨울의 설원이었다. 산 정상은 구름을 머리에 인 듯 높고 웅장했다. 하얀 눈이 도로 양옆으로 소복이 쌓여 있었고, 공기는 차가워 볼을 에었다.
눈길에 발을 내딛자마자 나는 중심을 잡으려 허우적댔다. 평소에도 잘 휘청거리는 나인데 눈 위라니, 마치 빙판 위 펭귄이었다. 뒤에서 딸이 오길래 당연히 나를 잡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잡아주는 건커녕, 갑자기 내 등을 힘껏 밀어버렸다.
"꺄악!!!"
나는 그대로 앞으로 휘청이며 거의 눈밭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건 딸의 배꼽 잡는 웃음소리였다.
"이렇게 넘어지면 훨씬 재밌잖아!"
나는 "너는 잡아줘야지, 왜 밀어!" 하고 소리쳤지만, 딸은 웃느라 숨도 못 쉬는 상태였다. 순간 억울했지만, 그 얼굴을 보니 나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여행에서 이런 황당한 순간이 바로 오래 남는 추억일 테니까.
밤이 되자 산 위의 찬 공기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재킷을 껴입고도 추위에 덜덜 떨면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시원함과 차가움이 뒤섞였다.
캘리포니아는 정말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곳이다. 몇 시간만 운전해도 계절이 바뀌고, 사막과 숲, 그리고 눈 덮인 산맥이 공존한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솟아오른 나무와 구름을 찌를 듯한 산맥은 사람을 작게 만든다. 이 나라의 스케일은 남다르다.
"사계절을 하루에 달린다."
캘리포니아는 그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I7Hyh7Q_X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