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it 100
브런치에 올리는 100번째 글이다.
쓰다 보니 딱 떨어지는 이 숫자가 괜히 특별해 보였다.
'100'은 참 묘하다.
시험지 위에 찍히면 완벽이고,
지갑 속에 들어오면 든든하며,
나이로 새겨지면 경사다.
그런데 이 숫자의 의미는
국경을 넘으면 조금씩 달라진다.
한국에서 100은 곧 인생 만점표다.
아기가 백일을 넘기면
집안 어르신부터 친척까지 호출되고 주변에 떡을 돌린다.
100일을 사귄 커플은,
이미 서로의 민낯과 라면 먹는 습관까지 확인한 시점이지만
여전히 케이크를 자른다.
시험에서 100점을 받으면?
"역시 우리 손주, 백점 만점짜리구나!"
동네 어르신까지 감격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옆집 친구가 '보너스 문제'까지 맞았다며 자랑하는 순간,
그 백점은 묘하게 반쪽짜리가 된다.
일상에서도 100은 자주 등장한다.
"우리 아빠는 백 점짜리 아빠야."
"넌 내게 백 점짜리 친구야."
숫자 하나가 곧 마음의 도장을 찍어주는 셈이다.
여기서 100은 숫자를 넘어선 힘이 있다.
물 끓는 온도(100℃)처럼 인내가 끓어 넘는 순간이자,
"100일만 참자"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목표는 백세인생이다.
태평양을 건너면 100은 다른 얼굴을 한다.
먼저 100달러짜리 지폐, 일명 벤자민.
이걸 지갑에 넣고 있으면, 초등학교 시험에서 100점 맞았을 때의
뿌듯함은 순식간에 눌려버린다.
왜 벤자민이냐고? 지폐에 그려진 (Benjamin Franklin) 벤자민 프랭클린은 특별한 얼굴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발명가, 외교관, 사상가…
한마디로 뭐든 다 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그래서 100달러를 손에 쥐는 순간, 그냥 돈이 아니라
"나는 지금 부자다"라는 기분을 살짝 사치스럽게 맛볼 수 있다.
시험 100점 땐 느낄 수 없었던 그 달콤한 우월감, 벤자민이 가져다준다.
미국에서 "Keep it 100"이라는 표현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다, 진실되게 행동하다'라는 뜻이다.
숫자 100이 여기서는 완벽한 진실성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 "You gotta keep it 100"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정직을 넘어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라는 문화적 가치까지 담는다.
일상 대화에서는 누군가 "That’s 100% true."라고 말할 때,
사실을 확실히 한다는 뜻으로 쓴다.
광고 속 "100% satisfaction guaranteed."(100% 만족 보장")
역시 칭찬이라기보다 보증과 약속의 숫자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가 더 얹힌다.
힙합 문화 속에서 크게 유행한 노래
'It’s All About the Benjamins' (Puff Daddy, 1997)-(직역하자면 모든 것은 벤자민에 관한 것이다)
에서의 Benjamin은 앞서 말한 100달러 지폐에 그려진 벤저민 프랭클린을 뜻한다.
결국 "It’s all about the Benjamins"라는 말은
"결국 중요한 건 돈"이라는 메시지로 퍼졌고,
이후 미국인들에게 100은 돈의 은어로도 쓰이게 됐다.
기상캐스터는 여름날 이렇게 외친다.
"오늘 기온은 100°F를 넘을 전망입니다."
순간, 모두가 숨 막히는 폭염과 녹아내릴 듯한 더위를 떠올린다.
장거리 여행길의 표지판에는
"100 miles more!"가 뜨고,
설렘과 지루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또 'Top 100 차트'는
성공의 지표이자,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다만 100번째 생일만큼은 예외다.
동네잔치, 신문 기사, 뉴스 특집까지— 온 나라가 들썩인다.
결론은 한국에서는 '100'이 완벽함, 성취, 장수를 상징하는
관념적·문화적 의미가 강하다.
미국에서는 신뢰, 재물과 더불어 진실·명확함 등 실용 및
상징적 의미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차이를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백점과 백세, 그리고 물이 끓는 순간으로.
미국에서는
100달러와 100퍼센트,
그리고 100도의 날씨와 100마일 여정,
차트의 100위까지.
숫자 100은 결국 어디서든
뭔가를 완성시키는 숫자다.
그리고 내게도 오늘,
이 100번째 글이 작은 백점 같은 순간이다.
혹시 누군가 이렇게 축하해 준다면—
"백세까지, 백 점짜리 사랑.
그리고 100달러짜리 행운이 함께하길."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덧붙일 것이다.
"그리고 100번째 글을 쓴 나에게도, 작은 박수 하나 부탁드려요" ㅎㅎ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께는
오늘 하루가 백 점짜리 순간,
100% 만족스러운 시간으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T4Ab90xk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