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도 리허설이 필요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미국의 문화와 삶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결혼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돌아간 한국에서의 삶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나도 남편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딸을 키우며 하루하루가 성장의 시간이 됐다.
인생에 태평양을 두 번 건너 이사하는 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인생 참 내 맘 같지 않다.
나는 딸과 함께 두 번째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 없이.
남편은 한국에서 계속 다큐멘터리 PD를 하며 산속, 오지, 섬마을, 바다 등
전 세계를 떠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러기 아빠가 됐다.
짐을 쌀 때도 대단했다. 우리는 짐을 두 종류로 나눴다.
한국에 둘 짐, 그리고 미국으로 보낼 짐.
그날부터 두 집 살림이 시작됐다.
우리는 가끔 영상통화로 서로에게 묻는다.
"여보, 이거 어딨지? 물으면 대답한다.
" 그거, 미국 갔어 또는 한국집에 있지".
우리는 매일 집안에서 뭘 찾아 헤매는 탐정 놀이를 했다.
인생이 코미디인지 드라마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한국집을 지키며 우리 모녀는 미국에서 삶을 꾸려갔다.
남편은 가끔 미국을 오가며 '가짜 기러기 아빠' (독수리)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인생이 늘 그럴 듯, 예상 못한 일이 터졌다.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온 세상에 등장한 거다.
모든 나라의 공항이 문을 닫고, 비행기가 멈추고,
지구가 정지버튼을 누른 듯한 그 시절.
그 덕분에(?) 남편은 자연스레 미국에 발이 묶였고 우리는 다시 '한 지붕 세 식구'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남편의 가짜 기러기 아빠 생활이 강제종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셋이 24시간 붙어 지내던 그때가 참 좋았다.
이때 남편 요리 실력이 부쩍 늘어 지금은 웬만한 요리는 다 잘한다.
심지어 난 한 번도 담아본 적 없는 김치까지 담근다. 맛도 일품!
코로나가 한창일 때 딸은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식도 온라인, 참 아쉽고도 어색했던 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점차 수그러들 무렵, 딸은 직장에 취직을 해 다른 주로 독립하게 됐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empty nest’를 맞이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세월은 바쁘게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일과 사람 사이에서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온 세월,
어느새 나도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을 준비하는 시점에 서있다.
누군가가 인생의 챕터를 넘기는 법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때로는 그냥 아무 일 없는 척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거야".
이제 우리는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살아갈지 고민해보려고 한다.
아직 은퇴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
그래서 일명 은퇴 수업 모의고사를 치르려고 한다.
은퇴를 연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그 첫걸음으로 5월 말에 한국집에서 생활할 예정이다.
등산도 하고, 늘 해보고 싶었던 빵지순례라는 것도 해보고.
빵을 너무도 사랑하는 빵순이로서 제일 기대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미국에서 은퇴연습을 해볼 생각이다.
연습이지만 이왕이면 타주로 이사해 볼 계획이다.
가능하면 딸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물론 딸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찌 됐던 우리는 준비 중이다.
흐르는 대로 가겠지 하며.
그 후 또 한 번 태평양을 건널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이 과정을 브런치 매거진에서 풀어놓을 예정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또 다른 챕터를 준비해 가는 친구가 되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