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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과 우정 사이

길이 있었네.

by Susie 방글이




얼마 전 글을 쓰며 발행 전 키워드를 고르다가, 문득 '우정'이라는 단어가 가족 이야기와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 나는 오래 품어온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낼 수 없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라기보다, 삶을 지나오며 무의식 깊은 곳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감정의 결을 건드리는 문장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한 번쯤은 비슷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식탁 위 국을 휘젓다가 잠시 스치는 가벼운 생각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속 어딘가에 접어 두었다가 꺼내기 어려운 오래된 편지 같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질문을 오랫동안 간직한 채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무엇인지 모르게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선’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막연히 느꼈던 것 같다.


그 선은 사랑, 책임, 보호, 사명감 같은 단어들이 모여 만들어낸 거리였다. 마치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막상 안아보려 하면 팔꿈치가 부딪혀 버리는 묘한 경계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이 선명한 선이었다. 부모는 지켜야 하고 자식은 기대야 한다는 오래된 규칙 안에서, 한 사람은 늘 조금 더 단단해져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언제나 사랑이 깊을수록 더 신중해지고, 가까울수록 더 많은 말을 삼키게 되는 역설적인 무게를 품고 있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그 무게를 더 키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보다 사랑을 담당하는 역할에 더 익숙해진 채 살아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엄마가 되면서, 예전에는 벽처럼 느껴졌던 그 선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단단하고 어두운 벽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마음의 각도에 따라 빛이 스며드는 작은 문틈처럼 보였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 경계라기보다, 서로에게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면 열리는 공간이었고, 때로는 그 안으로 따스한 기류가 스며드는 통로이기도 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한 발만 다가가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 문틈은 생각보다 넓어졌고, 그 안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친구 같은 우정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애초에 벽이었던 적은 없고, 다만 우리가 너무 오래 벽이라고 믿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틈을 가장 선명하게 체감한 순간은 미국에서 친구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였다. 친구는 집에 없었지만, 나는 그분들과 차를 마시며 정치 이야기, 연애 이야기, 그리고 각자의 일상 속 조용한 고민들까지 가볍게 나누었다.


부모님과 비슷한 연령대의 분들과 이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동시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경험은, 내가 '가족에게만' 기댄다는 방식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주었다.


비슷한 감정은 한국 여행 중에도 찾아왔다. 딸은 미국에 있었고, 우리는 딸의 가장 친한 친구와 그 부모님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웃고 이야기했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흘러온 삶의 결이 한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순간,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 것이 결국 마음의 방향성에 의해 달라진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꼈다. 그 모든 경험이 내 안의 낡은 선들을 조금씩 부드럽게 지워나갔다.


그제야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가족과 친구 사이의 거리는 혈연이나 나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지, 가볍게 웃어줄 여유, 서로를 향한 작은 용기 같은 것들이 그 거리를 결정한다.


우리 부부와 딸은 친구보다 가깝고 가족보다 더 솔직하다. 함께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진지한 마음의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딸이 멀리 있을 때 딸의 친구로부터 오는 짧은 안부 메시지는 잠시 딸의 숨결을 내 곁으로 데려다 놓는 듯한 기분을 주고, 그 작은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한 신뢰와 우정 같은 결을 확인한다.


딸 친구도 합류! 발끝에서 확인한 편안한 거리감


심리학자들은 친밀감을 '작은 순간들이 오래 쌓여 만들어지는 신뢰'라고 하고, 철학자들은 사랑은 책임에서 시작되고 우정은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과 우정이 포개지는 지점에 서 보면 그 둘은 어색하게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섞이며 전혀 새로운 온도를 만들어낸다.


결국 부모와 자식이 친구 같을 수 있느냐는 정답을 요하지 않는다. 친구처럼 지내지 않아도 괜찮고, 친구보다 더 가까워져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느냐이다. 그때 가족은 사랑을 넘어서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내 편'이라는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가족에게 바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우정이 아닐까.


세 식구, 장난 모드 ON


오늘, 내 편과 함께 장난과 우정으로 하루를 채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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