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맞이하는 설렘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내가 머물고 있는 세인트루이스 남쪽의 한 주택가는 조용히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에는 평범했던 집들이 하나둘 전구를 켜는 순간, 이 길은 갑자기 연말이 된다.
사람들은 이곳을 '캔디 케인 레인(Candy Cane Lane)'이라 부른다. 연말이면 일부러 찾아와 차를 천천히 몰고 지나가거나, 걸음을 멈춰 서서 반짝임을 바라보는 거리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잠시 발걸음을 늦추고 전구 아래 서 있었다.
10월 31일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미국의 거리와 집들은 순식간에 빨강과 초록, 반짝이는 전구로 가득 찬다. 이곳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꽤 진지하게 맞이한다. 장식은 미리부터, 그리고 과감하게 시작된다.
정원에는 눈사람과 산타 인형이 줄지어 서고, 지붕 위 전구는 자동차 전조등만큼 밝다. 밤이 되면 동네 전체가 작은 축제장처럼 보인다. 처음 이 풍경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어머, 이 정도까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연말 파티와 가족 모임, 선물 교환,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쇼핑 시즌까지 이어지며, 연말 전체를 감싸는 하나의 시간이 된다.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은 성급함이 아니라, 이 계절을 충분히 살아내고 싶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연말을 놓치지 않겠다는, 꽤 진지한 태도다.
장식을 바라보는 마음은 크리스마스 전과 후로 극명하게 달라진다. 설치 직후와 크리스마스 전날, 반짝이는 전구 하나, 리본 하나에도 설렘과 감탄이 가득하다. 우리 집거실 천장에 작은 전구를 늘어놓고 "와, 예쁘다" 하고 혼잣말을 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마치 인생에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첫발을 내딛는 때처럼, 모든 것이 반짝이고 매 순간이 선물 같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같은 장식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지만, 설렘은 사라지고 허망함이 남는다. 산타와 눈사람은 갑자기 먼지가 쌓인 인형처럼 보이고, 빨강과 초록의 색감마저 시들해진다.
그래서일까, 지난겨울 크리스마스가 끝난 다음 날 문득 전구를 바라보다가 '아, 또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고 마음이 툭 내려앉았던 순간이 있었다.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묘한 공허함과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장식은 쉽게 철거되지 않는다. 어느 동네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1월을 훌쩍 넘겨서도 남아 있고, 어떤 집들은 2월이 다 되어서야 전구를 끈다. 이미 새해는 한참 앞으로 가 있는데, 불빛은 작별 인사를 미루고 있는 듯하다. 계절은 분명 다음으로 넘어갔는데, 마음은 아직 한 해를 다 보내지 못한 얼굴이다.
설렘이 끝나면 허망함이 남지만, 그 과정 자체가 삶을 버티게 한다. 겨울밤 창밖의 전구를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확실한 위안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알면서도 장식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둔다. 빛이 아니라, 그 빛을 바라보던 마음을 놓기 아쉬워서.
매년 이맘때가 되면 딸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연말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반대다. 남편과 내가 딸이 사는 곳으로 와서 이 계절을 건너고 있다. 익숙하던 연말의 풍경이 살짝 뒤집힌 이 장면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더구나 올해 이곳의 겨울은 따뜻하다. 코트 대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다 보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게 된다. 연말이라기보다 낯선 나라를 여행 중인 기분에 가깝다.
그런 상태로 바라본 캔디 케인 레인의 장식은 묘했다. 공기는 계절을 앞질러 가 있었고, 전구들만이 겨울을 고집하고 있었다. 가볍게 걸친 옷차림 사이로 스치는 따뜻한 바람 속에서, 눈사람과 산타는 제철이 지난 이야기처럼 서 있었다. 그 어긋남 속에서 설렘과 허전함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캔디 케인 레인의 반짝임을 따라 걷다 보면, 바로 옆으로 Route 66이 이어진다. 한때 미국을 가로질러 사람과 물건, 사연을 실어 나르던 길이다. 연말 장식으로 가득 찬 거리와는 전혀 다른 결의 풍경이지만, 두 공간은 묘하게 나란히 놓여 있다.
그 길 위에는 이 동네의 오래된 명소, Ted Drewes Frozen Custard (아이스크림 집)이 있다. Route 66을 따라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겨울의 끝자락, 연말의 한복판인데도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커스터드를 손에 들고 서 있는 모습이 계절을 잠시 헷갈리게 만들었다. 전구도, 리본도 없었지만 그 풍경만큼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전구로 가득한 캔디 케인 레인과, 시간의 흔적이 남은 Route 66, 그리고 계절을 살짝 비껴간 커스터드 가게.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장면들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이, 반짝임과 허무, 설렘과 공허가 교차하는 지금 내 마음과 그대로 겹쳐졌다.
캔디 케인 레인의 전구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식과 마음의 흐름은 참 닮아 있다고. 기다림과 설렘, 감탄과 허망함, 붙잡음과 놓음. 같은 장식이라도 바라보는 순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반짝임이 되기도 하고, 허무가 되기도 한다.
반짝이던 전구 하나가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먼지가 쌓인 산타 인형이 지난 계절의 기억을 살짝 씁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인생의 크리스마스처럼, 우리는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새로운 설렘과 허망함을 함께 맛본다.
지금의 나는 크리스마스 전의 설렘과, 지나간 장식 속 허망함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마음 한켠에는 아직 반짝이는 전구 같은 기대가 남아 있고, 다른 한켠에는 끝나버린 계절을 떠올리며 느끼는 묘한 허전함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 사이사이에는, 곧 밝아올 새해에 대한 기대가 조용히 스며 있다. 지나간 한 해의 설렘과 허망함을 모두 안고, 다시 새로운 계절과 또 다른 반짝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내 마음도 천천히 불을 켠다.
곧 다가올 새해처럼, 내 마음도 살짝 설렘으로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