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사는 게 아니라, 계속 시작하는 중
집으로 돌아와 어느 아침, 공기는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야말로, 삶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잠시 다른 풍경을 다녀왔지만, 생활은 정확히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늘 그렇듯 무심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는데, 남편이 문득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물었다.
"우리, 언제부터 헬스클럽 다시 가지?"
그 질문에 나는 잠깐 멈췄다가,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몇 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안 간 지 한 달이 넘었으니, 지금 다시 간다면 그건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하는 것'에 가깝다고. 이미 몸이 리세트가 된 상태였다고.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왜인지 둘 다 웃음이 났다. 매번 리세트 되는 우리 삶 같아서.
분명 등록도 했고, 처음엔 꽤 성실했다. 운동복도 새로 사고, 물병도 챙기고, 오늘은 상체, 하체 중 어디를 할지 나름의 계획도 세웠었다. 시작할 때만큼은 늘 진심이다. 진짜 진심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 번 안 가고, 두 번 안 가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그 모든 기록은 놀라울 만큼 말끔히 사라졌다. 출석도, 의지도, '이번엔 진짜'라는 다짐도 함께.
다시 헬스클럽에 들어서면, 몸은 이미 기억을 잊은 듯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안 간 시간만큼 몸도 성실하게 리세트 되었다. 오래 쓰지 않은 집에 먼지가 쌓이듯, 몸도 가만히 두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결과는 정확하게 남는다.
다시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올 것이다. 아주 정직하게. 다음 날 아침, 몸은 고장 난 건 아닌데 분명 어제와는 다르다. 일어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양말을 신으려다 잠시 멈춘다. 팔을 들면 왜 이 간단한 동작에 설명서가 필요해졌는지 의문이 든다.
하루쯤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진짜는 그다음 날 온다. 이틀째 아침, 몸은 이미 말하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아플 거야."
계단은 생각보다 길고,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은 갑자기 작은 이벤트가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좀비처럼 몸을 운반한다.
그래서 운동 무게도 처음처럼 시작해야 한다. 아주 소심하게, 눈치 보듯이. 기구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옆 사람 눈치를 살짝 보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낮은 숫자로.
머리는 예전에 들던 무게를 기억하지만, 몸은 이미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말한다. 리세트 된 몸은 언제나 솔직하다. 여행 가방을 가볍게 싸야 길이 편하듯, 시작도 가벼울수록 오래간다.
웃긴 건, 이 모든 게 억울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패했다는 기분도, 자신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싶다. 안 하면 처음이 되고, 멈추면 몸과 마음이 리세트 되는 구조. 몸은 늘 정직하고,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운동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꽤 자주 리세트하며 산다. 직장을 옮길 때도 그렇다. 경력은 그대로인데, 출근 첫날엔 다시 명함을 건네고,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프린터 비밀번호를 물어본다. 이전의 나는 분명 존재했는데, 새로운 공간에서는 다시 '처음인 사람'이 된다.
이사도 마찬가지다. 오래 살던 집을 떠나 다른 동네로 옮기면, 단골 가게도, 익숙한 길도 모두 사라진다. 쓰레기 버리는 요일을 다시 외우고, 가장 가까운 마트부터 찾아야 한다. 삶은 이어지는 것 같지만, 생활은 분명 리세트 되고 정돈된다.
우리는 이렇게 리세트 하며 살아간다. 관계도, 일도, 몸도, 생활도. 완벽하게 이어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만, 실제로는 수없이 처음으로 돌아가며 살아간다. 삶은 하나의 긴 직선이라기보다, 여러 번 새로 시작하는 점들의 연결에 가깝다. 거창한 리부팅도, 극적인 전환도 아니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초기화된 상태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조만간 헬스클럽에 다시 갈 것이다. 처음 운동하는 사람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처음 드는 무게처럼 조심스럽게 기구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근육통과 함께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 또 리세트 됐네.'
그래도 괜찮다. 리세트 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삶이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오늘 들 수 있는 무게만 들고, 오늘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는 것. 그렇게 가볍게 시작하면, 생각보다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려준다.
시작해도 충분하다.
우리는 그렇게, 리세트 하면서 살아간다.
리세트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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