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마음을 풀 때
우리 집은 여름에는 에어컨을 많이 안 틀어도 시원하다. 그런데 그 시원함이 겨울까지 이어지는 탓에, 겨울이 되면 센트럴 히터를 켜 놔도 집 전체가 따뜻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하루 종일 틀어도 온기가 천천히 올라오기 때문에, 특히 추위를 유난히 타는 남편은 늘 "춥다, 춥다"를 연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파이어플레이스를 더 의존한다. 히터는 켜 두지만, 파이어플레이스를 켜야 비로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지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미국의 대부분 파이어플레이스는 도시가스가 아니라 프로판 가스를 탱크로 배달받아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으로 장작을 피우는 형태도 있지만, 재를 치우고 굴뚝을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 대신 우리는 청소 걱정이 거의 없는 프로판 가스를 쓴다.
유리 너머에서 불꽃이 천천히 흔들리며 연기 한 점 없이 깔끔하게 타오른다. 소리도 거의 없지만, 불빛과 살짝 올라오는 열이 동시에 집 안의 공기를 바꾼다. 단순히 온도를 올리는 히터와 달리, 몸과 마음을 동시에 녹이는 장치다.
불꽃이 흔들리면 방 안 공기는 금세 따뜻해지고, 조명은 살짝 어두워진다. 파이어플레이스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라앉고, 집 안은 평화롭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손을 맞대어도, 잔을 들고 있어도,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듯 느껴진다. 말은 줄어들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앉는 순간이 생기고, 잠시의 집중과 여유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딸 집에 가기 전, 우리는 가스를 채워 놓고 가려했다. 그런데 배달 시간과 우리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거의 빈 상태의 가스로 집을 비우고 다녀왔다. 돌아온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졌다.
밖은 여전히 차갑지만, 우리는 파이어플레이스를 마음껏 켤 수 없다. 가스 요청은 해 두었지만,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언제 배달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잠깐 켜고 금세 꺼야 하고, 우리는 소파에 담요를 둘러 몸을 웅크린다. 불이 금세 꺼질까 봐 눈치를 보면서도, 잠깐 느껴지는 따뜻함에 살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정도면 일단 됐어. 가스 다 떨어지기 전에 끄자."
작은 불빛과 담요가 만들어 내는 아늑함 속에서, 몸과 마음은 살짝 풀리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긴장이 남아 있다.
그러던 중 문자가 도착했다.
'내일 가스 배달 스케줄이 잡혔습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말했다.
"아, 틀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렸다. 손은 이미 불 스위치로 향했고, 마음은 '이제 괜히 참지 말자'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문자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불을 켤 때마다 눈치를 보던 내가, 지금은 마음 편히 따뜻함을 즐기고 있었다. 불빛 아래 웃음과 온기가 퍼지며, 남편과 나는 한결 느슨해졌다.
며칠 후, 또 다른 순간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아껴둔 와인이 있었다. 특별한 날에 마시자는 와인. 남편은 늘 농담처럼 묻는다.
"아, 그 특별한 날이 도대체 언제야?"
그 질문에 나는 늘 웃으며 넘기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한 박자씩 뒤로 물러서는 소리가 있었다. 오늘은 아니야, 조금 더 기다리자. 그런데 그날 저녁 메뉴, 감바스는 와인과 완벽하게 맞았다.
문제는 집에 아껴둔 와인 한 병밖에 없다는 것. 평소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은 이미 다 마신 상태였다. 아껴둔 건 여전히 나중을 위해 남겨 두고 싶었지만, 그 유혹 앞에서 마음은 살짝 흔들렸다.
'사러 갈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밖은 겨울밤의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게다가 나는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귀찮음과 추위가 동시에 속삭였다. '가지 마. 오늘은 그 정도 의지가 없는 날이야.'
그때 남편이 요리를 마무리하고 아껴둔 와인을 꺼내며 웃었다.
"이거 마시자!
결국 나는 마음을 접고 와인을 땄다. 코르크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괜히 웃음이 먼저 나왔다. 잔을 채우며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아, 결국 이렇게 마시게 될걸. 그렇게 아꼈나.'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다. 내 게으름 때문이다. 추운 날 다시 나가 와인을 사러 가기 싫었고, 그렇게 기다리던 '특별한 날'은 결국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오늘, 이 저녁이 그날이 된 것이다.
와인 잔을 부딪히며 웃음 속에 마음이 풀리고, 남편과 나는 한결 느슨해졌다. 아껴둔 즐거움이 단숨에 터져 나왔고, 오늘 이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히터처럼 하루 종일 돌리며 버텨야 하는 시간이 있고, 파이어플레이스처럼 잠깐 켜도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계속 아끼기만 하면, 따뜻해지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가끔은 아껴둔 마음을 풀어도 괜찮다. 불이 꺼질까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믿어 보는 것. 아껴둔 와인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한 박자 미뤄 두던 즐거움도, 결국은 지금 이 순간 꺼내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언제 불을 켜고, 언제 아껴둔 즐거움을 꺼낼지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조금 기다리다가도 결국 지금이 그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어차피 웃음과 온기는 남아 있고, 우리 마음은 180도 달라져 있으니까, 다음 특별한 날을 또 기다릴 필요는 없다. 아껴둔 와인처럼, 오늘의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늘 그럴 순 없지만, 특별한 날은 내가 정한다.
수평과 수직이 함께 서 있듯, 버틸 때와 즐길 때도 나란히 존재한다. 오늘 아껴둔 즐거움을 꺼내든 것처럼, 작은 순간에도 충분히 의미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