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이 라면이 된 날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오른 한국어

by Susie 방글이




1월 2026년, 올해 옥스퍼드 영어사전 (Oxford Dictionary)에 한국 단어 여덟 개가 새로 등록됐다.


Ramyeon(라면)

Haenyeo(해녀)

Sunbae(선배)

Ajumma(아줌마)

Bingsu(빙수)

Jjimjilbang(찜질방)

Officetel(오피스텔)

그리고 Korean barbeque(코리안 바비큐)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단순히 단어의 뜻만 정리하는 사전이 아니다. 영어가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기록하는 일종의 역사서에 가깝다.


한 단어가 이 사전에 오른다는 것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용되며 그 의미와 맥락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실렸다는 사실은, 그 언어와 문화가 세계 속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사전에 올랐다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우리 단어들이 세계 속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 국뽕이 살짝 차오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사전에 실린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단어가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경험까지 자동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들이 문화로 살아 숨 쉬기 위해서는, 여전히 그것을 사용하고 설명하고 경험으로 이어가는 우리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전에 등록된 단어- 라면, 해녀, 선배, 아줌마 (라면- 차이니스 스타일?이라는 게 살짝 거슬리지만요 ㅎㅎ)


빙수, 찜질방, 오피스텔, 코리안 바비큐


지금까지 라면이라고 하면 대부분 ramen으로 알려졌다. 일본식 라멘과 구분 없이, 단순히 '라면'이라는 음식으로 통용되었고, 딱히 한국식 라면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발음 그대로 ramyeon, 라면으로 등록된다. 표기는 달라졌고, 이름도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라면은 김치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라는 걸,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젓가락으로 면을 풀어가며 먹는 음식이라는 걸. 밤늦게 혼자 먹어도 묘하게 위로가 되고, 친구와 나눌 때는 더 빨리 사라지는 음식이라는 걸. 단어 하나로는 그 마음과 경험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해녀는 설명이 필요 없다. 제주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고, 숨을 참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말보다 먼저 장면이 떠오르고, 그 장면 하나로 하나의 문화가 설명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의 블루스 속 해녀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대사를 몰라도 이해되는 삶, 바다에 들어가기 전의 숨 고르기와 물 밖에서의 짧은 농담까지. 그 드라마는 해녀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게 두었다. 아마 해녀라는 단어도 그렇게 이해되는 게 가장 맞을 것이다.


해녀의 모습,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까지 함께 느껴진다.


선배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학교나 직장,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선배는 조언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잔소리 뒤에는 이유 없는 걱정과 기대가 섞여 있다. 후배와 함께 웃고, 때로는 눈치 보는 순간까지, 선배라는 존재는 단어만으로는 그 무게와 미묘한 뉘앙스를 담아내기 어렵다.


드라마 속에서는, 가끔 이 선배가 연인이 되기도 한다. 현실과 상상을 섞어보면, 선배라는 단어에는 그런 작은 설렘과 긴장감까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선배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줌마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결혼한 여자,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엄마,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 골목을 누비는 전투적 존재. 가벼운 잔소리와 친근한 눈치, 살짝 무례함과 무심함과 열정이 뒤섞인 그 에너지는 단어 하나로 다 담기지 않는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상상해 보면, 아줌마는 슈퍼맨보다 강하다. 현실과 일상을 척척 해내며, 가족과 일을 동시에 챙기는 힘과 지혜를 가진 존재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 뒤에는 강인함과 품격, 자기만의 속도를 지켜내는 여유까지 숨어 있다.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바로 그런 힘과 멋, 그리고 감춰진 슈퍼파워가 담겨 있다.


빙수는 이제 우리가 알던 흔한 팥빙수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떤 빙수든, 하나를 가운데 두고 여러 명이 숟가락을 넣어 나눠 먹는 장면이 빠지면 어딘가 허전하다. 얼음이 녹기 전에 서둘러 퍼 먹던 손, 달콤함이 입 안에서 섞이는 순간, 그 소소한 경쟁과 웃음까지 포함해서 빙수는 완성된다.


중앙에 놓인 빙수, 여러 손길이 스며드는 순간, 맛과 즐거움이 함께 퍼진다.


찜질방을 떠올리면 먼저 공기의 감촉이 생각난다. 습기와 열기, 바닥에 눕는 몸의 무게. 사우나 후 삶은 계란을 까먹고 식혜를 마시며, 미역국 한 숟갈로 속을 달래는 풍경. 타올로 머리를 감싸 양 모양을 만들던 장난기와, 그걸 보고 괜히 웃음이 터지던 순간까지. 찜질방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그 시간의 온도를 다 담을 수 없다.


오피스텔은 크기보다 분위기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작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창,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구조.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이 퇴근 후 신발을 벗고 들어가던 방,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이면 충분해 보이던 그 세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코리안 바비큐는 불판 위에서 시작된다.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며 내는 소리와 연기, 그 냄새가 코를 스치면 이미 식욕이 깨어난다. 누군가는 고기를 집게로 돌려가며 굽고, 누군가는 쌈을 싸면서 손길을 바쁘게 움직인다.

상추 위에 마늘, 고추, 밥을 올려 크게 싸서 한입에 넣는 순간, 불판의 열기와 육즙, 쌈의 상큼함이 동시에 터진다. 단어만으로는 그 온도와 손맛, 웃음소리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이 음식은 맛뿐 아니라, 함께하는 방식과 웃음, 손길까지 포함한 문화다.


불판 위 고기에서 퍼지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함께 나누는 손길까지, 코리안 바비큐는 단어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사전에 올랐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단어는 세상 속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 의미와 경험까지 살아 있게 만드는 건 여전히 우리 몫이다. 우리가 말을 붙이고, 손으로 만들고, 같이 느끼고 나눌 때 단어는 진짜 살아 움직인다. 냄새와 소리, 손길과 맛, 그리고 그때의 기억까지 담아내는 건 사전이 아니라 우리다.


라면 한 그릇을 나누며 깔깔 웃던 시간, 찜질방에서 타올로 장난치며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 바닷속 해녀가 숨 고르며 건넨 짧은 농담, 코리안 바비큐 앞에서 손을 맞추며 즐기던 맛과 웃음, 이 모든 게 단어 뒤에 숨은 삶의 이야기다.


단어와 경험이 함께할 때, 단어는 단순한 철자를 넘어 삶과 문화, 기억까지 담는 그릇이 된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어가고, 살리고, 또 나누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단어가 사전에 정착했어도,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감각, 웃음과 손길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설명하고, 느끼고, 기억하며, 단어를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찜질방 타월 양머리 룩을 완벽하게 소화한 우리 빼꼼이, 작은 평화 속에 누워 있다.


단어를 삶으로 만드는 일, 이제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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