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놓였는가
우리는 치킨 티카 마살라 (Chicken Tikka Masala)를 진짜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고, 믿고 먹는 음식에 가깝다. 메뉴판 앞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아도 되는 선택. 하루가 어수선했을 때, 괜히 다른 걸 시켰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을 때,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음식이다. 접시에 담긴 소스의 색과 농도, 닭의 식감까지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세상은 자꾸 바뀌는데, 이 음식만은 약속을 지킨다.
그날도 그랬다. 난(Nan)을 찢어 소스를 찍어 올리며, 거의 습관처럼 먹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음식이 인도에는 없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도 음식처럼 보이지만, 정작 인도에서는 찾기 힘든 음식. 인도 출신 요리사들이 만들었지만, 영국에서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완성된 음식. 이후 미국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가끔 우리는 지인들 중 인도 사람들에게 인도 음식 추천을 부탁한다. 매번 같은 걸 먹으니, 오늘은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어서다. 그럴 때마다 이름부터 낯선 카레들, 지역 이름이 붙은 요리들, 집에서 먹는다는 음식들이 나열된다. 메뉴판에서 본 몇 가지 이름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는 꼭 덧붙인다.
"우리는 치킨 티카 마살라를 좋아해요."
그러면 늘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잠깐의 멈춤, 살짝 웃는 얼굴, 말끝을 흐리는 대답.
"어… 그건 인도 음식이라고 하기엔…"
틀렸다고 말하지도, 맞다고 인정하지도 않는 표정. 그 짧은 공백 안에, 이 음식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가 들어 있다. 국경선 위, 어느 나라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회색 지대 같은 자리. 그 순간 나는 알게 된다. 이 음식이 어디에 속하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받아들여졌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른 음식 하나로 이어진다. 짜장면이다. 짜장면은 한국 사람에게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다. 이삿날, 졸업식 날, 시험이 끝난 날.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식. 하지만 중국에는 우리가 아는 짜장면이 없다. 중국에서 건너온 소스는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얼굴을 얻었고, 그 얼굴은 너무 오래 한국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치킨 티카 마살라와 짜장면은 닮아 있다. 둘 다 태어난 곳보다 살아온 시간이 더 또렷한 음식이다. 출발점은 분명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다른 땅에서 완성되었다. 현지 입맛에 맞게 조금씩 조정되고, 설명하기 쉬운 방향으로 단순해지면서, 대신 더 많은 사람의 하루 속으로 들어왔다. 원래의 언어를 조금 잃는 대신, 새로운 언어로 말을 건네는 법을 배운 음식들이다.
이런 음식들은 늘 애매한 자리에 놓인다. 정통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하고, 가짜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기억을 품고 있다. 마치 출신을 묻는 질문에 한 단어로 대답할 수 없는 사람처럼.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려면 문장이 길어지고,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존재들.
영국에서는 치킨 티카 마살라를 국민 음식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짜장면은 하나의 의식 같은 음식이 되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보다, 언제 먹었는지가 더 중요해진 순간들. 이 음식들은 레시피가 아니라 기억으로 전해진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곳에서 현지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인사를 하고, 날씨 이야기를 하고, 거의 의례처럼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어디서 왔어요?"
우리는 사는 곳을 말한다. 미국 동부, 어느 도시. 그러면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우리도 잠깐 헷갈린다. 아, 지금 이 질문은 사는 곳을 묻는 건가, 태어난 곳을 묻는 건가. 아니면 국적을 묻는 건지, 출발점을 묻는 건지.
머릿속에서 문장이 몇 갈래로 갈라진다.
'한국에서 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게 맞나.'
그 잠깐의 망설임 속에서, 질문 하나가 사실은 꽤 여러 개였다는 걸 알게 된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치킨 티카 마살라와 짜장면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 왔는지보다, 지금 어디에 놓여 있는지가 더 또렷한 존재들. 설명하려 들면 길어지고, 그냥 받아들이면 자연스러운 상태.
그날도 우리는 치킨 티카 마살라를 남김없이 먹었다. 접시 바닥에 남은 소스까지 난으로 훑어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정리된 기분이었다. 고향을 정확히 가리킬 수 없는 것들이, 때로는 가장 편안한 자리에 놓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음식들에 마음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묻는 것들. 설명은 부족해도, 이미 충분히 자기 자리를 얻은 존재들.
정통과 비정통 사이에서도, 삶은 충분히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