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마트는 전쟁터가 된다
주말에 19인치, 그러니까 약 48cm의 눈이 올 거라는 예보가 떴다. 숫자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양이다.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렇게 요란한 폭설도 대부분 하루나 이틀이면 정리된다는 사실이다. 제설차가 돌고 큰길은 다시 열린다. 뉴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상이 오래 멈춰 서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늘, 마치 몇 달간 고립될 것처럼 장을 본다.
집은 크고 냉장고는 넉넉하다. 그런데도 필요 이상의 재료를 담는다. 고기, 채소, 과일, 과자, 통조림, 각종 냉동식품,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휴지다. 이유를 물으면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없으면 곤란하잖아."
그 속에는 단순한 준비 이상의 심리가 숨어 있다. 눈앞에 비어 있는 선반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주변이 텅 빈 것을 보면 괜히 나도 사야 할 것 같고, 마음 한켠에 불안이 스며든다. 폭설이 실제로 오래가지 않아도, 사람들은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한 발 앞서 준비하고 싶은 것이다.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휴지는 당장 없어도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다. 그럼에도 장바구니에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눈 오는 날의 휴지는 생필품이라기보다, 마음의 위안에 가깝다.
문득 코로나 초기에 있었던 휴지 대란이 떠올랐다. 처음 몇몇 사람이 카트에 휴지를 잔뜩 쌓았다. 그 모습이 보이자, 다른 사람들도 이유를 묻기보다는 따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 휴지가 사라졌다.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늘 가장 먼저 휴지를 선택했다. 휴지는 언제나 '그래도 일상은 유지된다'는 최소한의 확신이었다.
그날 마트에 갔을 때, 폭설 예보는 알고 있었지만 필요한 것만 사려 했다. 그런데 선반들이 여기저기 텅 비어 있었다. 물, 빵, 우유, 계란은 예상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파였다. 다른 채소는 없어도, 파는 늘 자리를 지키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파를 사러 몇 군데 마트를 돌았다. 마지막으로 간 마트에서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파 있나요?"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주변 식당에서 싹쓸이해 갔다고. 눈 때문에 재료 배달이 멈출까 봐, 식당들도 대비하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장면 하나가 스쳤다. 주방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번 폭설엔 파가 생존 아이템이야."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날 마트에서 사라진 건 파만이 아니었다. 휴지도 없었고, 소금도 없었다. 마트는 마치 재난 대비 훈련장 같았다. 휴지는 마음의 안전벨트, 파는 식당들의 생존 재료, 소금은 길 위의 생명줄이었다.
한국에서는 시에서 도로와 인도를 빠르게 치워 큰길은 금세 정상화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집 앞 드라이브웨이와 인도는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폭설 예보가 뜨면 소금을 준비한다. 'rock salt'라 불리는 거친 소금을 집 앞 길과 드라이브웨이에 뿌리면 얼음을 녹여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소금이 없으면, 어렵게 치운 자리마저 그대로 얼어붙어 차를 빼거나 걷기가 위험해진다.
결국, 미국에서 눈이 온다는 건 하늘에서 내리는 눈뿐 아니라, 이미 마트 선반과 집 앞 길까지 대비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몸에 익은 계산으로, 눈이 내리기 전에 이미 장바구니를 채운다.
눈이 오기 전, 마트 안은 이미 눈 폭풍을 겪은 셈이었다. 휴지도 사라지고, 파도 사라지고, 소금마저 모자란 마트 한편을 보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서도 생존 게임이 시작되는구나."
눈은 하루 이틀이면 끝나지만,
미국의 장바구니는 늘 그 이후까지 대비한다.
결국 폭설 대비의 핵심은 단순하다.
굶지 않을 것, 그리고 불편하지 않을 것.
이쯤 되면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이건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미디어가 만들어낸 예습일까.
그리고 우리는 며칠 동안, 장바구니보다 더 무거운 눈을 치울 생각에 허리가 아플 것 같다…
휴지는 예전에도 한 번 글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아래 링크는 그때 썼던 휴지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susieyou7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