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먼저 말을 거는 빵

우리는 왜 49센트를 선택할까

by Susie 방글이




크로와상 하나가 단돈 49센트다.


미국의 독일계 할인 마트, 리들(Lidl) 빵 코너 앞에 서면 그 가격표가 먼저 눈에 들어와 순간 멈칫하게 된다. 리들은 대형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고, 매장 안에서 직접 빵을 구워 판매하는 코너가 따로 있다. 포장도 브랜드도 없다. 그냥 트레이 위에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겉이 바삭한 크로와상, 달콤한 향이 나는 페이스트리, 설탕을 살짝 입힌 도넛, 바삭한 껍질의 바게트, 구수한 치아바타까지. 서로 다른 모양과 색, 향이 섞여, 마치 작은 베이커리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그중 크로와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동전 몇 개면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빵을 담을 종이 봉지를 들고 진열대 앞에 서면, 가격표가 다시 눈을 사로잡는다.


49¢, 79¢, 99¢.


트레이 위에 놓인 오늘의 선택, 49센트 크로와상들


트레이 위에 가지런히 놓인 바삭한 크루아상, 달콤한 페이스트리, 바게트와 치아바타까지. 작은 빵 마켓 한켠의 풍경.


겉은 바삭, 속은 쫄깃. 심지어 하나에 79센트.


껍질은 바삭, 속은 부드럽다. 트레이 위 바게트가 오늘 하루의 만족감을 약속하는 듯.


줄줄이 붙은 숫자들 사이에서 크로와상은 늘 맨 첫 칸에 있다. "오늘 아침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가격표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 빵집에 가면 보통 가격보다 이름을 먼저 읽었다. 소보로, 크림빵, 소금빵, 카스테라, 단팥빵. 이름이 먼저 말을 걸고, 그다음 가격을 확인했다. 하지만 리들의 크로와상은 조금 다르다. 버터 크로와상, 단돈 몇십 센트짜리 빵. 맛보다 단가가 먼저 떠오른다.


가끔은 이 빵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떠올려 본다. 어딘가 큰 공장에서 반죽이 만들어지고, 기계로 접혀 냉동된 뒤 매장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매장 오븐에서 다시 구워진다. 이 빵이 실제로 볼륨을 얻고 '빵답게' 되는 순간은, 오븐 속에서 마지막으로 구워질 때일지도 모른다.


집게로 하나 집어 봉지에 넣는 순간 생각은 금세 사라진다. 적은 금액에 사는 크로와상 하나가 내 아침이 되고, 늦은 점심이 되고, 장을 보다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 된다. 배를 채우기엔 충분하고, 가격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크로와상은 어디에서 먹어도 떠올리는 바로 그 맛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버터 향도 진하다. 페이스트리, 도넛, 바게트, 베이글, 치아바타 같은 다른 빵들도 특별하진 않지만 꾸준히 손이 가는 맛이다.


반대로 미국의 한국 빵집에 가면 조금 다르다. 요즘 빵 값이 너무 비싸다. 트레이를 들고 빵을 고르다 보면 4달러짜리 소금빵, 6달러짜리 크루아상, 케이크는 50달러 가까이한다. 8~9달러 하는 생크림 조각 케이크 앞에서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춘다. 그곳에서 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작은 이벤트에 가깝다.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먹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사는 가격이다.


물론 한국 빵집은 메뉴가 훨씬 다양하다. 하지만 메뉴가 많다고 다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오늘 내가 선택할 빵 하나가 중요하다.


그에 비해 리들의 49센트 크로와상은 정말 특별하다. 요즘 빵값이 전반적으로 오르다 보니, 이런 가격은 이제 흔치 않다. 그래서 그 숫자 자체가 일상의 작은 안도처럼 느껴진다. 특별한 스토리도 없고, 화려한 분위기도 없다. 그냥 빵이고, 그냥 싸다. 그래서 오히려 일상 속에서 더 자주 손이 간다.


갓 구운 빵 냄새 가득, 종류만큼이나 고민도 가득한 한국 빵집 풍경


한국 베이커리의 유혹- 갓 짜낸 생크림과 화려한 토핑이 시선을 사로잡는 조각 케이크.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먹어도 되지 않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저렴하게 만들어져 내 손에 오기까지, 무엇이 조금씩 덜어졌을까. 재료일까, 사람의 손길일까, 동네 빵집 특유의 공기일까. 천천히 빵을 고르며 머무는 시간이나 공간 같은 것들이 줄어든 대신, 가격이 낮아진 건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그 크로와상을 산다. 장을 보고 나오다 허기가 밀려올 때 생각할 여유 없이 손이 먼저 움직인다. 따뜻한 빵을 차 안에서 뜯어먹으면 그냥 편안하다. 맛 때문이라기보다, 일상을 무난하게 채웠다는 작은 만족감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빵을 고르는 동시에 하루의 균형을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좋은 재료, 더 정성 들인 빵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이 부담 없는 가격을 선택하는 마음.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 상황에 맞는 선택일 뿐이다.


리들의 크로와상은 작은 기준처럼 남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 걸까. 맛일까, 가격일까, 아니면 오늘 하루를 무리 없이 보내기 위한 균형일까. 동전 몇 개면 살 수 있는 작은 빵을 떠올리며 한 입 베어 물면, 특별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맛이 난다.


아마 대부분의 일상이 그런 맛일지도 모른다.


빵 냄새 가득한 코너, 트레이마다 다른 빵들이 조용히 오늘 내 선택을 기다린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서 산 빵이 아니라 오늘 나를 조금 돌봐준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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