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웃고, 나는 억울하고
눈이 33 cm 이상 왔다. 이번 폭설은 역대급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숫자로만 봐도 숨이 막히는 양이었다.
눈 예보가 뜨자 SNS가 바빠졌다. 눈 치우는 요령, 허리 안 다치는 법, 삽 고르는 팁까지. 정보는 넘쳤고, 사람들은 금세 두 편으로 나뉘었다.
눈이 많이 쌓이기 전에 조금씩 치우라는 사람들과, 눈이 다 그친 뒤 한 번에 치우라는 사람들. 조금씩 치우면 눈이 적을 때 덜 힘들다는 주장과, 대신 그 수고를 여러 번 나눠야 한다는 단점.
한 번에 치우면 양은 어마어마하지만, 어쨌든 끝은 한 번이라는 주장.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엇을 선택해도 힘들다는 점에서는 모두 비슷했다.
내 성격상, 나는 단계별이 맞을 것 같았다. 미리 조금씩 해두면 마음이 편해지는 쪽이다. 냉장고도 늘 미리 채워두고, 여행 짐도 출발 며칠 전부터 꺼내 놓는 사람이다.
남편은 그 반대였다. 내가 나가서 치우겠다고 하면 "기다렸다가 눈이 완전히 그친 뒤에 하자"라고 말리는 사람. 그는 한 번에 끝내거나, 끝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쪽을 선호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도 귀를 닫고, 눈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삽을 들고나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람에 날리는 눈이 얼굴을 때렸고, 눈송이가 코를 스치며 머리카락은 얼어붙었다. 손은 금세 시리고, 삽은 무겁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생각보다 눈은 더 빠르게, 더 많이 내렸다. 결국 몇 번 삽질을 하고 나니 포기 모드가 찾아왔지만, 그래도 자존심만은 남아 있었다. 드라이브웨이 한쪽이라도 치워두고 들어왔지만, 눈은 그날 밤까지 쉬지 않고 쏟아졌다.
그날 밤 10시가 넘어, 눈이 완전히 그친 뒤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마당에는 내가 남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중간에 치웠던 곳은 눈이 확실히 덜 쌓여 있었지만, 바닥이 단단히 얼어 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힘은 두 배로 들었고, 허리는 욱신거렸다.
한 번 드러났던 땅이 차가운 공기를 그대로 맞은 탓이었다. 마치 미리 해둔 일들이 막판에 다시 손을 봐야 할 때처럼, 빨리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처음부터 들춰보게 되는 순간 같았다.
반면 처음부터 손대지 않았던 곳은 눈이 훨씬 많았다. 치워야 할 양은 분명 많았지만 바닥은 얼지 않았다. 눈이 눈 위에 쌓여 땅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겹겹이 쌓인 눈은 의외로 순하게 밀려났다. 미뤄두었던 일들을 마감 직전에 한꺼번에 끝낼 때처럼, 몸은 힘들어도 결정은 오히려 단순해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렇다. 준비를 미리 하는 사람은 초반에 힘이 들고,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마지막에 한꺼번에 허리가 아픈 법이다.
회의 자료를 일찍 준비한 사람은 막판 수정 메일에 다시 자리에 앉고, 마감을 미룬 사람은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숨을 고른다.
일찍 도착한 사람은 식어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기다리고, 늦게 도착한 사람은 헐떡이며 자리에 앉는다. 방식만 다를 뿐, 피로는 공평하다.
지금도 치워 쌓아 둔 눈더미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날이 계속 추워서 녹을 기미가 없다. 언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눈을 치운 일은 끝났지만, 눈이 남긴 일은 아직 진행 중이다. 쌓아둔 선택은 이렇게 한동안 자리를 차지한다.
눈은 언젠가 녹겠지만, 그게 다음 주일지 몇 주가 걸릴지 알 수 없다. 눈더미를 보며 그날의 선택과 상황이 떠올랐다.
"거봐, 내가 뭐랬어? 한꺼번에 치우는 게 낫다고 했지!"
남편의 묘한 승리의 눈빛과 함께 온몸이 욱신거리는 우리의 현실.
아마 이 근육통은 쌓인 눈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눈으로 깨달은 건 분명하다. 어떤 일은 조금씩,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맞고, 어떤 일은 한 번에 확실히 끝내야 한다. 때로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중요한 건 움직이고 경험해 보는 것뿐이다.
아마 나는 여전히 단계별로 해야 한다는 성향은 못 버릴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오면, 그때는 조금 더 고민은 해보겠지.
아니면 어쩌면 또 삽 들고나갈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