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인가, 치즈인가: 아침 숙취의 선택
전날 저녁 메뉴와 어울리는 와인을 땄다. 한잔이 한 병으로 이어진 우리.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벌써 국물을 찾고 있다. 다행히 전에 얼려둔 콩나물국이 있어 얼른 해동시킨다. 미국에 살지만, 우리 부엌은 극히 한국인. 해장도 한국 스타일이다.
머리는 약간 울리고 속은 꾸물거리지만,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마음이 풀린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올리는 순간, 어젯밤의 과음과 후회는 살짝 옆으로 밀려난다. 아침 숙취, 한국과 미국에서는 장면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이라면 뜨거운 국물로 속을 씻어내러 가고, 미국이라면 기름과 치즈로 속을 덮어버리러 간다. 같은 술, 같은 숙취인데 해결 방식은 거의 종교 수준이다.
한국에서 숙취는 자연스럽게 해장국집으로 이어진다. 아직 눈도 제대로 안 떠진 채 떠올리는 생각은 단 하나, "아… 뜨끈한 국물."
해장국집에는 비슷한 얼굴들을 한 사람들이 앉아 있고, 말수는 적으며 주문도 빠르다. "선지 하나요." "콩나물로 주세요." 힘 빠진 주문 속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국물이 나오면 먼저 김을 보고 후후 불어 한 숟갈. 이 한 숟갈에 해장의 30%를 해결한다. 중요한 건 맛이 아니라, 속이 씻기는 느낌이다. 밥을 말고 김치를 올리며 어젯밤의 나를 조금씩 용서하는 동안, 해장국집은 일종의 아침 회복실이 된다.
반면 미국에서의 숙취 아침은 이미 점심에 가깝다. 알람은 여러 번 스누즈 당했고, 그때 도착하는 메시지 하나, "Brunch?"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미국의 해장은 혼자가 아니라 사회적 이벤트다. 팬케이크, 프렌치토스트, 베이컨, 소시지, 해시 브라운, 치즈가 흘러내리는 오믈렛, '이게 아침 맞나' 싶은 버거. 집에서 먹게 되면, 전날 밤 먹다 남은 차가운 피자까지 테이블을 채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음식이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다는 점이다.
속을 씻어내기보다 기름과 치즈로 한 겹, 두 겹 덮어서 술기운을 눌러버리는 전략이다. 반성 대신 이불을 한 장 더 덮는 느낌이다. 여기에 미모사나 블러디 메리까지 더해지면 한국식 사고로는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여기선 주말 브런치의 기본 세트다.
이 차이에는 건강과 위로에 대한 담론도 숨어 있다. 한국에서 해장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자동으로 '간에 좋다', '해독 작용', '피로 회복' 같은 말이 따라붙는다. 북어에는 타우린, 콩나물에는 아스파라긴산, 다슬기가 간에 좋다는 소문도 자연스럽게 딸려 온다. 해장은 거의 건강관리의 연장선이다.
반면 미국에서 해장 음식은 건강보다는 감정을 책임진다. "이거 먹고 나면 좀 나아질 거야"라는 말속에는 칼로리나 포화지방보다 안락함과 위로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게 몸에 좋다더라”가 기준이 되고, 미국에서는 “이게 지금 나를 위로해 줄 것 같다”가 기준이 된다.
결국 숙취라는 같은 상황도 어느 사회에서는 몸의 문제로, 다른 사회에서는 마음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의 해장은 몸을 다독이고, 미국의 해장은 마음을 다독인다.
아마 이상적인 해장은 둘을 섞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물로 속을 씻어내고, 브런치처럼 웃으며 전날의 흑역사를 나누는 것. 그러다 보면 우리는 또다시 다짐한다. "다음엔 좀 적당히 마시자."
결국 해장은 몸도, 마음도 함께 챙기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