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만난 강아지 이름으로 보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
산책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외쳤다.
"Sophia(소피아)!"
딸 이름이다. 딸은 함께 걷고 있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익숙한 이름은 참 이상하다. 사람을 먼저 움직이게 한다. 알고 보니 얼마 전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던 이웃이 새로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참이었다. 강아지 이름이 Sophia(소피아)였다.
우리 동네 산책길에서는 가끔 헷갈린다. 지금 부르는 게 사람인지, 강아지인지.
"Charlotte(샬럿)!"
"Mary(메리)!"
"Cody(코디)!"
"Finley(핀리)!"
"Franklin(프랭클린)!"
동네 엄마들이나 아이들 이름들 같지만 절반은 네 발 달린 존재들이었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Come here, Mr. Spencer(이리 와, 미스터 스펜서)!"
왠지 어디선가 중절모 쓴 신사가 걸어올 것 같았다. 하지만 풀숲에서 튀어나온 건 귀가 펄럭이는 작은 강아지였다. 그날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개도 'Mr.(미스터)'가 붙는다. 심지어 이름 뒤에 Junior(주니어)가 붙는 경우도 있다.
산책길에서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할아버지 이름이 Franklin(프랭클린)이고, 반려견 이름이 Franklin Junior(프랭클린 주니어)라면?
"Franklin(프랭클린)!" 하고 부르는 순간 한 명은 돋보기를 찾고, 한 마리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지 않을까. 이름 하나가 만드는 작은 코미디다.
한국에서 흔히 듣던 이름은 모찌, 초코, 코코, 콩이, 몽이, 해피, 보이, 두부 같은 것들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미 귀여움이 완성된다.
"초코야~" 하고 부르면 말끝이 저절로 늘어진다. 혀가 짧아지고, 표정이 풀린다. 이름이 먼저 사랑을 예약해 두는 느낌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Jeff(제프), Mary(메리), Cody(코디) 같은 이름을 많이 붙인다. 이름만 들으면 이미 사회생활 10년 차 같다.
"Cody(코디), sit(앉아)."
"Mary(메리), stop(그만)."
부르는 톤도 단단하다. 이곳에서 반려견은 귀여움의 대상이기보다, 함께 사는 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한국이 더 사랑하고, 미국이 덜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식 이름은 애정이 먼저 다가가고, 미국식 이름은 존중이 먼저 선다. 우리 집 강아지 빼꼼이는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
한국이름은 눈이 빼꼼하게 생겼다고 해서 '빼꼼이'. 미국이름은 발음이 어려워 그냥 'Beckham(베컴)'이 되었다.
‘빼꼼아' 하고 부르면 세상 순한 얼굴로 달려오고, ‘Beckham(베컴)!" 하고 부르면 괜히 모델 워킹이라도 할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같은 강아지인데, 이름에 따라 분위기가 바뀐다. 한국에서는 애교 담당, 미국에서는 약간 축구 유망주 느낌이다.
산책길에서 수많은 이름이 불린다. 사람의 이름, 강아지의 이름, 그리고 가끔은 둘 다.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비슷하다. 어느 나라에서든 누군가는 오늘도 애정을 담아 부르고, 누군가는 존중을 담아 부른다.
그리고 우리 빼꼼이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꼬리를 흔들며 두 세계를 오간다. 사랑은 언어가 달라도 통한다는 말, 어쩌면 산책길에서 가장 자주 증명되는 문장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같다. 산책길에서 불리는 수많은 이름들처럼, 사랑은 언제나 각자의 발음으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