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조금만 따뜻해도 다 벗을까

아직 봄도 안 왔는데 반바지라면, 한여름엔 대체 뭘 입지?

by Susie 방글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길가에는 녹다 만 눈이 남아 있었고 공기는 여전히 겨울 같았다. 패딩을 벗을 생각조차 못 하던 날씨였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 기온이 화씨 60도(섭씨 16도)를 넘자 거리 풍경이 갑자기 달라졌다. 마치 누가 "여름 시작!"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사람들이 동시에 반팔과 반바지를 꺼내 입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샌들까지 신고 등장한다.


반팔과 반바지 사이에서 가벼운 가디건을 걸친 내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아직 봄도 안 왔는데?'


그리고 곧 두 번째 생각이 따라온다.


'그럼 한여름에는 대체 뭘 입지?'


심지어 겨울 내내 보이지 않던 조깅족도 갑자기 나타난다. 마치 햇빛이 그들을 땅속에서 깨워낸 것처럼. 미국에서는 이렇게 날씨가 조금만 풀려도 사람들이 갑자기 여름 모드로 돌입한다. 오랫동안 기다린 햇빛을 한 번에 즐기려는 듯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봄이 오기 전부터 이미 태양과의 전쟁 준비가 시작된다. SPF 50+ 선크림, 팔토시, 넓은 챙 모자까지. 태양은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방패를 들고 있다.


가끔은 좀 과하다 싶은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마음속으로는 몰래 비의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를 흥얼거리며 걸을지도 모른다.


미국 거리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태양을 피해 다니지 않는다. 오히려 태양을 향해 성큼 걸어간다. 민소매, 반바지, 슬리퍼 차림. 햇빛은 여기서 건강과 활동성, 그리고 여유의 상징이다.


한국에서는 햇빛을 오래 쬐면 "큰일 났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미국에서는 "오늘 날씨 너무 좋다!"라는 감탄이 먼저 나온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에서 시작된다. 과거 농업 사회에서는 피부가 하얗다는 것이 노동을 하지 않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현대 미국에서는 살짝 탄 피부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나 휴가 다녀왔어."


영화와 패션 잡지, 서핑과 비치 문화는 이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태양 아래 활동적인 모습은 건강미와 젊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이 되었다.


그래서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미국인은 태양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마치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서퍼처럼, 혹은 "올해는 좀 건강해 보이겠어!"라는 결심으로.


헬스장을 가보면 이 문화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구석에는 전신 마사지 기계가 조용히 서 있지만 태닝 부스 앞은 분위기가 다르다. 작은 줄이 생기기도 한다. 밖에서 태양을 못 만난 사람도 인공 태양은 포기하지 않는다. 땀은 흘리지 않아도 브론즈빛은 포기하지 않는 의지다.


땀은 안 흘려도 색은 포기하지 않는다


겨울잠 깬 사람들의 인공 태양 모임이 있는 곳


한국은 예방에 진심이다. 선크림은 외출 전 의식처럼 바르고 햇빛을 막을 수 있는 장비는 최대한 동원한다. 미국은 조금 다르다. 선크림은 종종 미뤄지고 해가 진 뒤 알로에 젤이 등장한다.


한국이 전쟁 전 대비라면 미국은 전쟁 후 구조다. 결국 한국은 '차단', 미국은 '복구'의 사고방식이다.


미국에서 여행 중 가끔 양산을 들고 걷다 보면 재미있는 질문을 듣는다.


"Why umbrella? It’s sunny!"


왜 우산을 쓰냐는 것이다. 비도 안 오는데. 그들에게 우산은 철저히 비의 소유물이다. 심지어 비가 와도 그냥 맞고 걷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니 해 아래 우산을 펼치는 사람은 그들의 가치관을 살짝 흔드는 존재가 된다.


사실 미국에서는 태양과 싸울 기회도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 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이다. 태양과 직접 마주하는 시간은 주차장에서 건물까지 걸어가는 몇 초 정도다.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람들은 태양을 피하기보다 얼굴을 들어 햇빛을 즐긴다.


햇볕? 걱정 마세요, 대형 방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태양과 싸우는 전쟁 중.


한국에서 태양은 노화의 적이다. 기미와 잡티, 주름까지 남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도망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태양이 청춘의 조명이다. 햇볕을 충분히 못 쬔 얼굴은 가끔 "너 아프니?"라는 질문을 듣기도 한다. 햇빛은 여기서 건강과 매력을 동시에 완성해 주는 존재다.


이 차이는 피부과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미백이나 주름 개선 등 미용 목적의 시술로 미리 피부를 지키느라 분주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햇볕으로 인해 생긴 손상과 주름을 회복하기 위한 복구 시술로 바쁘다. 같은 피부과라도, 한국과 미국은 태양을 대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


조금 따뜻하다고 여름 패션 완전 가동 (Wildwood Dog Park & Beach- 반려견 공원과 해변이 이어진 산책 코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사이에서 서성인다. 태양에 완전히 항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쟁을 치를 자신도 없으니까.


곧 다가올 햇빛의 계절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슬쩍 흥얼거린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완전히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즐길 수도 없는 것. 아마 그것이 우리가 곧 맞이하게 될 계절의 태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준비한다. 누군가는 선크림을 바르고, 누군가는 태닝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조용히 타협하며, 곧 찾아올 햇빛의 계절을 마음속으로 미리 맞이한다.


태양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즐기고 싶은 마음의 중간 지점


태양이 주는 즐거움과 걱정 사이, 우리는 그저 계절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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