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번이나 썼는데, 아직도 망설인다

숫자 너머의 하루들

by Susie 방글이




브런치 화면을 열었는데, 199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다음 글이 200번째라니.


"너 여기까지 왔네?"


숫자가 말을 건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10달 남짓, 나는 이미 200편의 글을 썼다.


한국어로 하면 "200번이나 썼어?" 놀랄 숫자지만, 영어로 쓰면 그냥 "two hundred posts"라 건조하게 적힌 숫자다.


100번째 글을 쓸 때, 나는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온도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백'이 완벽함과 성취, 장수를 상징하는 등 관념적·문화적 의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백점, 백세, 물이 끓는 순간처럼.


반대로 미국에서는 신뢰, 재물과 더불어 진실과 명확함 등 실용적이면서 상징적인 의미가 동시에 존재했다.

100달러, 100퍼센트, 100도의 날씨, 100마일 여정, 차트의 100위까지.


결국 숫자 100은 어디서든 무언가를 완성시키는 숫자였다. 한국과 미국, 느낌은 달라도 의미는 닿아 있었다.


한국에서 숫자 200은 늘 과장이 붙었다. 엄마가 "이 말 200번 했다" 하면, 실제로 200번은 아니어도 그 말이 얼마나 쌓였는지는 충분히 느껴졌다.


200, 블루베리 위에 자리했지만, 결국 달콤한 하루들의 모음일 뿐.


미국에서는 그냥 계산이다. GPS에 "200마일 남음"이라고 뜨면, 세 시간 더 운전하면 되겠구나, 하고 끝난다.


내가 여기까지 글을 쓰는 동안 그만큼의 커피를 마셨고, 노트북을 그만큼 열고 닫았으며, '오늘은 쓰지 말까’ 망설인 날도 그만큼 있었다.


55번째 글을 썼을 때 브런치에서 '크리에이터' 배지도 받았다. 그날은 괜히 내가 진짜 작가라도 된 것처럼 노트북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닫았다. 하지만 숫자로 셀 수 없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화면만 바라보며 글이 안 써지던 밤,

댓글 하나에 괜히 마음이 풀리던 저녁,

남편과 딸에게 "이 문장 어때?" 하고 물어보던 시간.


200이라는 숫자는 결국 작은 일상의 누적이자, 습관의 기록이자, 나 자신과 약속한 시간의 증거였다.


처음에는 뭐를 먼저 써야 할지 몰랐다. 한국과 미국 문화 비교, 여행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일상의 사소한 발견, 여행지 풍경, 뭔가싶은 우리 가족 이야기, 감정의 흐름까지…


떠오르는 대로 적다 보니 글은 조금씩 내 모양을 닮아갔다. 글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내가 보고 느끼고 기억한 것들을 기록하는 방식이 되었다.


200개의 글은 층층이 쌓인 케이크 같다. 완벽하게 반듯하지는 않지만, 맛이 겹쳐 만들어진 모양. 숫자는 200이지만, 진짜 중요한 순간들은 그 숫자 바깥에 있다.


오늘의 글도 케이크 한 조각처럼 (사진 출처: Lady M)


Lady M처럼 이쁜 케이크는 아니지만, 집에서 만든 삐뚤삐뚤 크레페 케이크 – 완벽하지는 않지만 층층이 쌓인 마음과 기억.


이제 201, 300… 숫자는 계속 늘어나겠지만 글은 조금 느리게,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재미있게 가고 싶다. 오늘 200번째 글을 쓰며, 나는 살짝 웃는다. 숫자가 나를 바라보지만, 결국 이건 경쟁도 목표도 아닌, 나만의 놀이이자 나를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하루에도 작은 순간 하나가 조용히 쌓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커피 한 잔, 웃음 하나, 혹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 잠깐의 시간처럼.



100번째 글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usieyou7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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