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맞지 않으면 들러붙는다
아침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란 하나가 내 아침을 바꿨다.
예전의 식단은 꽤 단순했다. 커피 한 잔, 빵 하나면 충분했고, 그 조합이면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대로 먹어도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할 나이가 되었고,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신경을 쓴다.
삶은 계란에 과일 몇 조각, 빵은 여전히 옆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이제는 계란이 테이블의 주인공이다. 단백질과 영양이 균형 잡혀 있어 아침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빵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마음을 다 내어주지는 않는다.
덕분에 거의 매일 계란을 삶는다. 문제는, 이 소박한 식재료가 생각보다 성격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껍질이 기분 좋게 툭툭 벗겨지며 매끈한 표면을 드러낸다. 그럴 땐 괜히 하루가 잘 풀릴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날은 달랐다. 껍질은 손가락에 들러붙고, 흰자는 여기저기 찢겨 나가 엉망이 된다.
궁금해 검색해 본 결과 이유를 알았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차가운 계란을 끓는 물에 넣으면, 껍질에 금이 가고 흰자가 급하게 팽창하며 들러붙는다고 했다.
삶은 계란 얘기인데, 이상하게 마음과 상황이 겹쳤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큰 변화 속으로 뛰어들면, 겉으로는 버텨내는 척해도 안쪽은 과하게 팽창하거나 얼어붙어 균열이 생기고, 스스로 정리하려 하면 더 많은 부분이 뜯겨 나가 버린다. 마치 계란 껍데기를 억지로 벗기려다 손가락까지 긁히는 느낌과 같았다.
전날 밤, 계란들을 싱크대 위에 줄 세워두었다. 다음 날 삶아보니, 껍질은 눈앞에서 툭툭 떨어지고, 손끝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이미 벗겨진 상태였다. 흰자는 매끈하게 드러나,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삶는 방법에도 여러 의견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식초를 넣어야 한다고 하고, 삶은 뒤에는 찬물에 한참 담가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란을 상온에 두어 속까지 차분히 준비시켰다면, 굳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온도가 맞는 계란은 자연스럽게, 손쉽게 껍질이 벗겨진다.
계란을 다루는 과정은 하루를 보내는 방식과도 닮았다. 준비가 되어 있으면, 누가 '식초 넣어라' '찬물에 담가라' 해도 웃어넘기면 된다. 조금 더 힘주거나, 서두르거나, 기다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잘 풀린다. 마치 손끝만 스쳐도 벗겨지는 계란처럼.
그 순간 이해가 됐다. 마음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바로 변화에 뛰어들면 깨지기 쉽지만, 잠시 시간을 두고 마음을 '상온' 상태로 만들면 덜 상처받는다는 걸.
이건 운동 전 준비 운동과도 같다. 가파른 산을 오르기 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과 관절이 차분히 풀리면서 갑작스러운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큰 사건을 맞이하기 전에 작은 준비를 거치면, 충격을 덜 받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술을 마시기 전에 음식을 조금 챙겨 먹는 것과도 같다. 빈속에 술을 들이켰던 날, 속이 뒤틀리고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음식은 술이 들어왔을 때 속을 보호하고, 몸이 받는 충격을 완화해 준다. 마음도 준비 없이 큰 사건 속으로 던지면, 그날의 나처럼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같은 상황도 전과는 다른 결로 다가온다. 처음엔 한꺼번에 밀려들던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그 사이로 숨 쉴 틈이 생긴다. 마음 한가운데 아주 작은 간격이 생기면서, 뒤엉켜 있던 것들이 천천히 갈라진다.
그제야 보인다.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저건 상대의 영역이라는 것. 전에는 모두 내 것처럼 끌어안고 버티려 했던 일들이, 조금은 가볍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계란이 매끈하게 벗겨지듯, 상황도 덜 들러붙는다. 억지로 떼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리되고, 그래서 덜 찢기고, 덜 아프게 지나갈 수 있다.
딸과 남편이 부르는 내 별명이 하나 더 있다.
'한다 아줌마', 일명 '한마'.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앞뒤 재기보다 일단 한다. 그리고 어긋난 부분은 나중에 수정한다. 추진력은 여전히 나의 장점이지만, 이제 나이가 들면서 그 장점을 그대로 믿기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판단력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고, 기억력도 가끔 뒤처진다. 그래서 더욱 준비하고, 내 '온도'를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나는 요즘 어떤 결정을 앞두면 한 번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어느 온도에 있는가, 아직 냉장고의 차가움이 남아 있는 상태인가, 아니면 조금은 상온에 적응한 상태인가.
이 질문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지만, 불필요하게 깨지는 일은 줄어든다.
물론 기다림에도 기한은 있다. 계란을 너무 오래 밖에 두면 결국 상해버리듯, 준비를 미루다 보면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적당한 온도를 찾는 일이다. 너무 차갑지도,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은 상태. 변화에 들어가기 전, 나를 덜 다치게 하는 그 중간 지점.
아침마다 계란을 삶으며 나는 이제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오늘 이 계란이 잘 까질지 아닐지를 가늠하는 동시에, 오늘의 나 역시 어떤 상태인지 슬쩍 들여다본다.
조금 두고, 조금 풀고, 조금 숨을 고른 뒤에 시작하면, 하루도 덜 찢기고 덜 들러붙는다.
그리고 웃긴 건, 가장 신선한 계란일수록 까기가 어렵다는 사실.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덜 깨지는데, ‘신선함‘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저항이 더 세다.
가장 새로운 경험, 가장 싱싱한 기회일수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아이러니.
힘들게 껍질을 벗기던 계란도, 상온에 두었다 삶으면 훨씬 쉽게 벗겨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온도를 맞추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