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지나간 현재를 나중에 이해한다
시간은 늘 다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간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시간은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우리는 같은 시간 위에 서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여러 번 만나고, 여러 번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괜찮을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면들이 먼저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음속에서는 여러 얼굴로 불어난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만들어지고, 그만큼 더 쉽게 우리를 흔든다.
현재는 붙잡는 순간마다 조금씩 사라진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창문을 여는 사이, 방금 전까지 있던 생각은 이미 다른 곳으로 넘어가 있다.
식탁에 앉아 잠깐 딴생각을 하면 대화도 금방 흐름을 잃는다. 손끝에 남아 있을 것 같던 순간들도 실제로는 계속 멀어진다.
과거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자주 돌아가게 되는 자리다. 끝났다는 이유로 안전해진 기억들, 혹은 끝났기 때문에 더 또렷해진 장면들.
가끔은 이유 없이 떠오른다. 어떤 계기도 없이 예전의 표정이나 말투가 불쑥 올라온다.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도 그 순간만은 잠깐 현재처럼 느껴진다.
사진이나 오래된 물건을 만질 때도 그렇다. 분명 끝난 시간인데, 잠시 그 안으로 되돌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그것이 더 이상 현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작 지금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한다.
얼마 전이었다. 집이 유난히 조용한 날,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전 받은 생일 카드를 발견했다. 누가 보낸 것인지도, 어떤 표정이었는지도 흐릿한 사람.
그 카드를 한참 들고 있었다. 별것 아닌 종이 한 장인데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 그 안에 남아 있던 온도가 잠깐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마음들이 왜 지금은 이렇게 선명해지는 걸까.
딸이 집에 와 있던 날들도 그렇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날보다, 함께 음식을 해 먹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남편이 무심하게 "뭐 먹을까"라고 묻던 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짧은 틈. 웃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루를 흘려보내던 시간.
우리는 그런 순간들이 사라질까 봐 계속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가면 더 많이 찍고, 더 오래 바라보고, 더 선명하게 남기려 한다.
영상 속 우리는 분명 그 순간을 살고 있다. 동시에 그 장면을 '나중의 나'에게 넘기고 있다. 현재는 그렇게 조용히 과거로 이동한다.
딸과 찍은 사진, 남편과 찍은 여행 영상 속 우리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는데, 나는 이미 그 시간을 조용히 지나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계속 기록하면서 과거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밀려난 시간들은, 한참 뒤에서야 조용히 돌아와 말해주는 것 같다.
그때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던 현재였다고.
오늘도 그냥 보냈는데, 나중엔 기억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