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지나가게 두었다
잔디 위에 남은 눈은 한 달 동안 녹지 않았다. 겨울이 마음먹고 눌러앉은 듯 단단했다.
오늘 산책을 하다가 그 앞에서 멈췄다. 눈이 녹고 있었다. 줄어드는 느낌이 아니라 퍼지는 느낌이었다. 무너지기보다 경계가 풀리고 있었고, 잔디 위에 떠 있는 모양은 하늘의 구름을 닮아 있었다.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아래에 내려와 있으니 괜히 오래 보게 됐다. 자연이 위치를 잘못 배달한 택배 같았다.
"이거 봐."
산책하던 중간에 남편을 불렀다. 빼꼼이는 냄새를 따라 바쁘게 앞서 가고 있었고, 남편도 그 속도에 맞춰 몇 걸음 더 나아가 있었다. 둘은 멈출 이유가 없다는 얼굴이었고, 나만 이유를 발견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남편이 잠깐 뒤를 돌아봤다.
"응… 눈이 녹네."
그에게 감동은 전달되지 않았다. 해설 없는 다큐를 혼자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둘은 다시 걸어갔고 나는 그대로 남았다. 괜히 더 오래 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 대단한 의미를 발견한 사람처럼 서 있었지만, 사실은 설명할 말이 없었다. 그냥 지나가면 아까울 것 같았을 뿐이다.
조금 멀어진 남편이 나를 불렀다.
"뭐 해, 안 와?"
예쁜 장면도 아니고 특별한 순간도 아니었다. 사진으로 남길 만큼 또렷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끔은 완성된 풍경보다, 이렇게 애매하게 멈춰 있는 풍경 앞에서 더 오래 서 있는 편이다. 마트 계산대의 불이 켜질 듯 말 듯 깜빡이면, 카트를 반쯤 밀어 넣은 채 눈치만 보는 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할 때, 탈까 말까 서로 멈칫하며 웃는 순간도 그렇다. 세탁기가 멈춘 줄 알고 다가갔다가, 아직 돌아가고 있어 괜히 한 번 더 기다리는 밤도 비슷하다.
이미 끝난 것도 아니고,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순간. 사람은 꼭 반 박자 머문다.
무언가가 끝나는 순간은 대부분 공지가 없다. 어느 날부터 덜 춥고, 어느 날부터 장갑을 안 찾고, 그러다 어느 날 '아, 겨울 지나갔네' 하고 뒤늦게 알게 된다. 시작은 또렷한데 끝은 흐릿하다.
그래서 눈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단단하던 것이 사라지는 장면이 아니라 자기 모양을 천천히 풀어놓는 장면. 겨울은 떠나는 중이었고, 나는 그 퇴장 장면을 우연히 관람한 셈이었다. 입장권도 없는데 1열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완전히 끝난 뒤에는 아무도 멈춰 서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건 확인만 하고 돌아설 뿐이다. 대신 아직 남아 있을 때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걷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간을 앞지르지 않고 옆에 나란히 두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겨울이 가는 게 아쉬워서라기보다, 그냥 보내기엔 내가 아직 거기에 남아 있던 날이었다. 아직은 끝났다고 말하기 싫고, 그렇다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서운함과 가벼운 허전함 사이에서, 다가올 봄을 함께 생각하고 있었다.
겨울 눈 위에 서 있는 마음처럼, 삶의 관계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늘 조금씩 기다리고, 살짝 뒤를 돌아보게 된다. 눈과 마음 사이, 계절과 일상 사이, 그 느린 박자 속에서 나는 겨울을 곁에 두고, 봄이 올 날을 천천히 기다린다.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간 속, 나는 반 박자 더 머물며 겨울을 곁에 두었다. 지나간 계절의 흔적과 남겨진 마음들을 느끼며, 봄이 올 날을 천천히 기다린다.
눈 위에 서 있는 마음처럼, 삶의 관계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멈춘다. 살짝 뒤를 돌아보며 오늘과 내일, 지나간 인연과 다가올 인연 사이를 음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느린 박자 속에서, 겨울과 봄, 지나간 날과 다가올 날, 그리고 흘러간 인연과 마주할 인연이 나란히 서 있다.
그렇게 한 계절이 먼저 지나가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