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사람 사이
나는 이미 자고 있었다. 남편은 거실에서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넘었을까, 방으로 조심히 들어오는 발소리에 잠깐 눈이 떴다.
"결국 전쟁이 시작됐네."
잠결에 들은 그 한 문장이 방 안 공기를 잠시 멈추게 했지만, 나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뒤 며칠 동안, 뉴스는 끊임없이 전쟁 소식을 전했다. 폭격 장면이 반복되고,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뛰었다. 도시 이름과 건물, 거리, 사람들의 움직임이 하루도 빠짐없이 화면을 채웠다.
한 뉴스 화면에서, 폭격 장면과 주가지수 이야기가 동시에 전해졌다.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는 장면과, 그 파괴 속에서 출렁이는 숫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전쟁 뉴스 다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는 늘 주식 이야기였다.
숫자를 보고, 그래프를 궁금해하고, 상황을 분석한다. 멀리서 보면, 폭격과 혼돈 속에서도 우리는 차분하게 숫자를 들여다보며 계산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고, 냉정하게도 보인다. 동시에, 화면 속 비극과 우리의 계산 사이의 간극이 어쩐지 희극적이고, 조금 우습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가까이서는 다르다. 도시의 거리 위에서 뛰는 사람, 연기 속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 그 모든 순간은 비극적이고 잔혹하다. 멀리서 보는 눈과 가까이서 겪는 삶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며칠째, 나는 그 대비를 곱씹는다. 전쟁은 사람의 일인데,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숫자로 넘어간다. 마치 그래프를 들여다보면 비극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위험과 손실을 계산할 수 있을 것처럼.
또 한 가지, 날 선 생각이 스쳤다. 결국 전쟁도 돈과 권력과 이해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폭격과 그래프가 동시에 반복되는 화면을 보며, 나는 그 연결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숫자가 아무리 흔들려도, 나는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화면 속 폭격과 혼돈을 보면서, 내 마음 한켠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그래프 속 숫자를 들여다보는 일 또한, 또 다른 방식의 생존의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삶을 이어가기 위해 숫자를 계산하는 행동—두 가지 마음이 나를 동시에 흔들었다.
나도 주식 투자자이기에, 숫자를 보는 일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다. 어떤 숫자는 누군가의 노후를 지키기 위한 생활비일 수도 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한 학비일 수도 있으며, 뜻하지 않은 실패 뒤 다시 일어서려는 누군가의 희망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결국 그 모든 숫자 속에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스며 있다. 그럼에도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마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만약 전쟁이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됐다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을까. 숫자를 먼저 보고, 그래프를 궁금해했을까. 아니면 눈앞의 혼돈과 공포 속에서 오직 살아남을 방법만을 찾고 있었을까.
멀리서 보면, 우리는 희극을 보고 있다. 뉴스 속 폭격과 숫자의 반복은 차갑고 아이러니하게 허탈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가까이서는, 모든 순간이 비극이다. 사람의 삶, 하루하루, 손에 잡히는 현실은 우리가 숫자에 담을 수 없는 무게로 쏟아진다.
가능하다면, 숫자보다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마음만은, 잃고 싶지 않다. 멀리서 뉴스 화면을 보며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가까이서 비극이 펼쳐지는 현실 속에서도 그 마음이 조금 덜 흔들리기를 바란다.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 우리에게 남은 작은 선택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도 오늘 하루,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마음 하나는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