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쩍펄쩍, 꼬리까지 흔들리며
책을 읽다가, 이렇게 소박한 기도를 발견했다.
'하느님, 우리 집 개가 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처음엔 웃었다. 기도 제목치고는 너무 소박했다. 세계 평화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우리 집 개 기준 통과라니. 이 문장은 왜인지 계속 내 안에서 맴돌았다.
그 안에는 조건도, 계산도, 평가도 없다. 그저 반갑고, 믿고, 기다리고, 다시 와 줄 거라고 확신하는 마음뿐이다. 개에게 주인은 완벽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로 좋은 사람이다.
우리 집 빼꼼이는 내가 현관문을 열면 세상이 다시 시작된 것처럼 달려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냥 우유 사러 다녀온 것뿐인데, 빼꼼은 혹시 간식이라도 생겼을까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그에게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손에 든 건 장바구니 하나뿐이다. 업적이라곤 슈퍼 세일에서 우유, 과일과 빵을 잘 건졌다는 정도다. 그런데 빼꼼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내 다리 앞에서 펄쩍펄쩍 뛰고, 꼬리까지 격하게 흔들지만, 시선만큼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마치 내 존재 자체가 오늘의 큰 사건이라도 된 듯하다.
말은 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이 돌아왔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가끔 속으로 생각한다. 얘는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것과, 수많은 내 일상의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언제나 그 비밀을 지켜주는(?) 귀여운 까만 입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미소 짓는다.
예전에도 이런 존재가 있었다. 딸이 어릴 때,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장난스럽게 나를 안고 "엄마~" 하며 친근하게 반겼다. 그런데 그 시선은 늘 내 가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슬쩍 가방을 열어보며 오늘은 엄마가 뭐를 사 왔을까 확인한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넌 엄마보다 가방에 관심 많구나?' 사실, 그 아이에게 나는 무언가 좋은 걸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작은 머리핀일 수도, 초콜릿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어도 결국은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빼꼼이나 딸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신이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 그 단순한 믿음.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어서 좋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 기도는 '좋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말이라기보다, '누군가에게 안전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돌아오면 꼬리 흔들며 달려가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사회에서 늘 역할로 평가받는다. 잘했는지, 맞았는지, 충분한지.
엄마로서, 아내로서, 사회인으로서 끊임없이 점수가 매겨진다. 어제의 실수는 저장되고, 오래전 선택도 가끔 호출된다.
하지만 강아지의 눈에는 그런 기준이 없다. 그 눈에 비친 나는 아마도 하루 중 가장 반가운 존재, 그냥 나라는 이유로 괜찮은 사람일 것이다. 성과가 아니라 존재로 환영받는 경험. 그건 생각보다 드물고, 그래서 더 귀하다.
그래서 그 기도는 조금 슬프면서도 조금 다정하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렇게 순수하게 믿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니까.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연다. 장바구니를 들고, 대단할 것 없는 하루를 살고 돌아온 사람으로.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다시 켜지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딸이 어른이 되어 있다. 가방 대신 휴대폰을 열고 짧은 문자를 보내온다. "오늘은 뭐 해?" 그 짧은 문자를 읽으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포근한 존재라는 걸 느낀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그 사람이어서 반가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하느님, 우리 집 개와 딸이 느끼는 그 마음 그대로, 제가 그런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