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두어도 사랑

무관심이 아니다

by Susie 방글이




겨울이라 화초에 물을 자주 줄 필요는 없다. 해가 짧고 흙도 쉽게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대충 2주에 한 번씩만 물을 준다. 달력에 적어두지도 않는다.


며칠 전 주말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화초들 물 줘야 되는데. 어림잡아 보니 2주가 지났다. 컵을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화초 물 줄 때 지난 것 같아."


남편은 화분을 힐끗 보더니 웃었다.


"얘네 우리가 신경 안 써도 진짜 잘 자라지."


듣고 보니 그렇다. 우리는 정성스러운 주인이 아니다. 분갈이도 거의 하지 않고, 영양제나 비료도 없다. 잎을 닦아준 적도, 음악을 틀어준 적도 없다. 그냥 둔다. 햇빛이 들면 화분을 한 번 돌려주는 정도다.


그런데도 잎은 도톰하고 윤기가 난다. 줄기는 묵묵히 위로 오른다. 애써 키웠다기보다, 그냥 두었더니 자랐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12년 전, 손가락만 한 작은 선인장을 하나 샀다. 그게 얼마나 크겠어 싶었는데 지금은 세 살 아이만큼 자라 거실 한켠에 서 있다. 어느 날 보니 옆에 작은 선인장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혼자였던 아이가 친구를 만든 셈이다.


나는 한동안 '내가 잘 키워서 이렇게 컸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떠올려보면 특별히 한 일은 없다. 선인장은 자주 물도 필요 없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정말 생각날 때 한 번. 그게 전부였는데 12년을 묵묵히 자라 지금의 키가 되었다.


무관심 속에서, 자기 힘으로.


12년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놀라운 성장. 손가락만 하던 게 알아서 든든한 친구까지 만들었다.


기다림 속에서 피어난 초록.


몇 달 전 딸이 화초 몇 개를 가져갔다. 자기 집에도 초록이 있으면 좋겠다며 골라 간 아이들이다. 연말에 딸 집을 방문했을 때 그 화초들을 보았다.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잎은 쪼글쪼글했고 생기는 다 빠져 있었다.


"얘네 왜 이렇게 됐어?"


딸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실비실한 것 같아서 영양제도 줬는데…"


잘 자라라고, 더 힘내라고 챙겨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오히려 더 지쳐 있었다.


생각해 보니 사람도 그렇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자리를 다시 잡느라 바쁘다. 화초들도 그랬을 것이다. 익숙한 자리에서 있다가 낯선 공간에 놓였다. 빛의 방향도, 물 주는 손길도 달라졌다. 게다가 우리 집과는 14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옮겨간 셈이니, 그 작은 몸으로는 시차 적응부터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몸살이 날 만했다.


그때 필요한 건 영양제가 아니라 시간이다. 흙을 뒤적이는 손이 아니라, 기다림의 눈이다. 식물은 먼저 아래로 자란다.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뿌리를 뻗는다. 겉으로 조용해 보여도 안에서는 힘을 만든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지 못한다. 못 보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흔든다. 하지만 뿌리는 예민하다. 자꾸 건드리면 방향을 잃는다.


딸을 키울 때도 그랬다. 도울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방향을 정해주기보다 넘어질 자리를 남겨두려 했다. 다치지 않게 막아주기보다 스스로 일어설 힘을 믿어보려 했다. 그게 맞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딸은 자기 발로 서 있다. 흔들려도 다시 균형을 잡는다. 어쩌면 우리가 해준 일은 많이 해준 것이 아니라 많이 하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닝커피 향이 남아 있던 그 아침, 화분에 물을 주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잘 키운 게 아니라 많이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란 건 아닐까. 물은 때가 되면 주고, 빛은 가리지 않게 두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성장에는 기술보다 여백이 필요하다. 무관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어주는 일.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 가만히 두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이다.


가만히 두어도, 새로운 생명은 옆에서 천천히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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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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