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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오해

케이크는 먹고, 문화는 배운다

by Susie 방글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13년 동안 한국계 미국 회사에서 HR로 일하며 참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고, 웃고, 당황하고, 또 익숙해졌다. 이 회사 직원 절반은 미국인, 절반은 한국인. 그 안에서도 영어가 편한 한국인, 한국어만 하는 직원,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사람까지 참 다양하다. 여기에 OPT 비자로 일하는 유학생들도 꽤 있어서, 이 작은 회사는 늘 문화의 롤러코스터다.


인사과 담당자라는 자리는 참 묘하다. 직원들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이면서도, 친구처럼 너무 편하게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면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이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직원들 간에 오해나 문화 차이로 생기는 갈등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회사 직원 A가 생일을 맞았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한국인이었고, 입사 후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마트에서 케이크를 사 왔다. 미국 마트 케이크는 대부분 그렇다. 알록달록한 크림에, 디자인은 누가 봐도 ‘집에서 만든 케이크’ 같은 투박함(?). 그래도 미국에서는 그런 게 익숙하고 정겹다.


케이크를 사 와서 직원들 모아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잘랐다. 그런데 A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했다. 나중에야 들은 얘긴데, 한국에서는 생일 케이크가 곧 정성이고, 예쁨이 중요하다. 누가 봐도 사진 찍기 좋고, 케이크 상자 열었을 때 "와~"하고 탄성이 나와야 제대로 된 축하라는 거다. 그런데 A는 뭔가 조잡하고 투박한 사각형 미국 케이크를 보고, 자신이 덜 소중하게 여겨졌다고 느꼈던 거다.


그때 깨달았다. 케이크 하나에도 문화가 담겨 있다는 걸. 내가 한국 문화를 잘(?) 안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온 직원들의 감정선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미국인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생일'을 어떻게 축하하느냐에 따라, 그날 하루의 기분이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흔한 미국 마켓 베이커리

그 이후부터는 생일 케이크를 고를 때 생일 당사자에게 슬쩍 물어봤다. "혹시 좋아하는 케이크 있어요?"라고. 어쩌면 별거 아닌 질문 같지만, 그 작은 차이로 오해도 줄어들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다. 직원들이 저마다 답한다. "치즈케이크요!" "당근 케이크!" "레드벨벳!" "초코 무스!" 쏟아지는 주문에 순간 후회는 덤.


'괜히 물어봤나… 그냥 생크림 케이크 살 걸.'


또 한 번은 OPT 비자로 입사한 중국계 직원 B가 팀 회의에서 조용히만 있는 모습에 미국인 매니저가 '소극적이다'라고 오해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식 회의 문화에서 선배나 상사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예의라고 배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니저에게 그런 문화적 차이가 있음을 설명해 주었고, B에게 "여긴 네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니까 주저하지 말고 말해도 괜찮다"라고 격려해 주었다.


회사엔 한국 직원이 유독 많은 부서가 있었다. 업무 특성상 한국어로 소통해야 해서다. 거기에 미국인 직원 C가 배치됐다. 밝고 호기심 많은 이 직원은 첫 팀 회식에서 한국식 '술자리 문화'에 제대로 당황했다.

회식은 한국식 갈빗집. 고기 굽는 연기 속에서 소주잔이 쉴 새 없이 돌았다. 한국인 동료들은 "원샷!"을 외치며 잔을 비웠고, 이 직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맥주만 홀짝였다. 8시쯤 되자 직원 C는 가방을 챙기며 "집에 갈게요, 재밌었어요!"라고 했다. 순간 테이블이 조용. 팀장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아직 1차인데, 2차 안 가?"


미국인 직원 C는 당황한 얼굴로 주춤했지만, 나는 조용히 귀띔했다. "한국 회식은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리고 2차는 꼭 안 가도 된다고 알려줬다. 그 후론 회식 강요도, 부담도 한결 덜게 했다.


미국에서는 '회식'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퇴근 후 동료들과 간단히 술 한두 잔을 즐기는 Happy Hour를

(바, 펍, 또는 레스토랑에서 오후 4-6시 사이에 술과 간단한 안주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는 프로모션 ) 즐기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미국 내 한국 계열 회사에서는 한국에서 온 직원들이 여전히 회식 문화에 애착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로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한국 직원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국은 매우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다. 특히 회사라는 공간에는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한다. 물론 그 수많은 문화를 모두 세심하게 챙기고, 일일이 맞춰주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오해만은 만들지 말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 누군가 기분이 상할 만한 일이나, 문화 차이로 마음이 어긋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필요하면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때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 작은 관심이 쌓이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믿는다.


사실 이런 노력은 회사 안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친구, 가족, 지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라도, 같은 가족이라도 자라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면 서로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난 당연한 줄 알았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구나' 하는 순간들이 우리 일상에도 참 많다. 그래서 나는 이제 회사에서 배운 그 방법을 회사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써보고 있다.


"이거 괜찮을까?"

"혹시 네 생각은 어때?"


별것 아닌 질문 하나가 오해를 막고,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해주는 순간이 있다. 문화라는 건 꼭 국적이나 언어의 차이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작은 틈 같은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작은 틈을 그냥 두면 오해가 되고, 때로는 마음의 거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 틈을 조금씩 좁혀가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사람 사이의 예의이자 배려라고 생각한다.

문화 차이는 미국과 한국, 언어의 문제를 넘어, 심지어 같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긴다. 중요한 건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잇는 다리를 놓으려는 노력이다.


혹시 문화적 차이로 오해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때, 어떻게 풀어나가셨나요?


다양함이 모여 만드는 하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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