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미국식 히어로물? 이번엔 한국이 주인
주말 저녁, 남편이 아마존 프라임에 올라온 영화가 있다며 보자고 틀었다.
대충 줄거리를 들어보니
세계가 테러에 휘말리고,
각 나라의 대통령이 납치되고,
용감한 누군가가 구해낸다는 내용이었다.
아, 또 그거구나.
뻔한 미국 히어로물.
그래도 남편이 팝콘을 들고 와 앉길래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 G20.
그런데 이게 웬걸—
영화 시작 20분 정도 후에 화면 속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 대통령 부부가 등장한 순간부터.
이 영화엔 일본도 중국도 존대감 제로다. 아예 언급조차 없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이다.
게다가 그 한국의 영부인은
세계의 긴급회의 한복판에서도
당당하게 한복을 입고 등장한다.
한복 특유의 단정한 선이 회의장의 긴장감 속에서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빛난다.
미국 액션 영화의 서사는 늘 예측 가능하다.
세계가 위기에 빠지면, 언제나 '별이 박힌 가슴팍'이 구한다.
총을 쏘는 손은 미국의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배경처럼 흔들리며 지나간다.
그런데 새 영화 G20 은
그 오랜 도식에 작은 균열을 낸다.
이번엔 미국이 아니라,
한국 대통령 부부가 세계의 중심에서 '길'을 낸다.
남아공에서 의 G20 정상회의장.
한순간의 테러로 모든 것이 멈춘다.
정상들은 눈빛만 교환한 채
"먼저 나서면 손해다"는 공포의 방정식 속에 갇힌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 부부는 달랐다.
영부인은 봉쇄된 회의장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숨겨진 통로를 가장 먼저 찾아낸다.
공항에서 한국 사람만 따라가면
출국장이 가장 빨리 보인다는 그 농담,
그 진리가 국제 위기 속에서도 통한다.
결국 미국 대통령까지 그 뒤를 따른다.
길 찾기엔, 역시 한국 사람이다.
진짜 반전은 그다음에 온다.
테러범이 각국 정상들에게 굴욕적인 명령을 내릴 때,
다들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도 희생되어선 안 됩니다."
정의감이 살아 있는 그 한마디에
관객의 속이 다 시원하다.
통역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텔러범한테 당당히 말한다.
“통역 따윈 필요 없다!” 하며 유창한 영어를 선보인다.
테러범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다.
"IT 강국이라 그런가… 잘 아시네."
그 농담 섞인 한마디가 이 영화의 정수를 꿰뚫는다.
기술이든 판단이든, 한국은 이제 '지시를 따르는 나라'가 아니라, '판을 새로 짜는 나라'라는 걸.
G20 은 다른 액션 영화랑은 다르다.
오랫동안 굳건하던 미국식 히어로 신화에
작은 금이 간 순간을 보여준다.
"세상을 구하는 건 언제나 미국이다"라는
낡은 문장을 조용히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한 줄을 쓴다.
"세상은, 이제 한국이 길을 낸다."
물론 여전히 영화의 뼈대는 미국식이다.
화려한 폭발, 단선적인 악역,
그리고 결국 미국이 중심에서 마무리 짓는다.
그럼에도 그 틈 사이로
한국 대통령 부부의 서사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공식이 흔들릴 때,
그 틈새로 새 빛이 들어온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재미다.
뻔한 미국식 히어로물이라 생각했다면,
이번엔 꼭 한 번 봐보시길.
공항이든 위기든—
길은 역시 한국인이 먼저 찾는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느껴진다.
이젠 세계가 한국을 다르게 본다는 걸.
예전엔 '작고 빠른 나라'로 불렸다면,
지금의 한국은 '길을 찾는 나라',
위기 속에서도 해답을 내는 나라로 비춰진다.
그 변화가 스크린 속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든 게,
어쩐지 뿌듯하게 국뽕이 차오른다. ㅎㅎ
예전엔 우리가 길을 따라갔다면,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