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깡- 그 미묘한 형제 이야기
한국에서 새우깡은 흔히 '국민과자'라고 불린다. 술안주로도, 노래방 테이블 위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늘 자리를 차지한다.
누구와 먹어도 어색하지 않고, 언제 먹어도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였다. 과자 판매 1위라는 기록보다 더 설득력 있는 건, 빠지면 허전해지는 수많은 순간이었다.
편의점, 마트, 계산대 근처 어디에서든 쉽게 손이 갔다. 라면과 김치, 김밥 한 줄처럼 배를 채워야 하는 음식도 아니고, 커피처럼 준비할 필요도 없는, 그저 봉지를 뜯으면 끝나는 간식이었다.
차 안에서 하나씩 집어 먹다 보면 바닥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고, 다 먹고 나서야 “언제부터 먹고 있었지?” 싶은 그런 존재. 한마디로, 생각보다 먼저 손이 가는 친구였다.
작년 여름,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봉지를 집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바삭함과 향은 늘 익숙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돌아와 미국 집에서 봉지를 뜯는 순간,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고소함이 살짝 덜했고, 향도 조금 얌전하게 조정된 느낌이었다. 크게 다르다고 말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자꾸 신경이 쓰이는 정도였다.
처음엔 내 입맛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는 말도 있고, 여행을 다녀오면 모든 게 달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억울했다. 수많은 음식 중에 하필 이 친구까지 달라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봉지를 뒤집어 들고 성분표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포장 뒷면에는 영어로 된 Nutrition Facts와 알레르기 경고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새우 원산지도 미국산과 중국산 비율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 판매용과 미국 수출용이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 찾아본 결과, 느낌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제조 방식과 성분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 판매용 봉지는 새우 분말 함량이 높고, 소금과 기름의 균형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져 있다.
반면 미국 수출용은 장거리 운송과 긴 유통 기한을 고려해 조정되었고, 향은 조금 순해지며, 지방 산패를 막기 위한 조치도 들어갔다. 물론 미국 식품 규정에 맞춘 성분과 기준도 따른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익숙하게 느끼던 바삭함은 조금 희미해지고, 먼바다를 건너온 기름진 맛이 살짝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이렇게 미묘하게 달라진 맛과 향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먹던 새우깡과 미국에서 만난 새우깡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형제라고 보는 게 맞다.
이제야 미묘했던 맛 차이가 설명되었다. 덜 고소하게 느껴졌던 것도, 향이 조금 더 정돈된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살다 보면 입맛이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과자도 환경에 맞춰 조금씩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봉지를 뜯는 장면 자체가 특별하지 않았다. 술자리 옆, 노래방 테이블, 편의점 앞, 여행길 차 안에서, 기차 안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미국에서는 다르다. 장을 보고 돌아온 뒤, 부엌에서 간식처럼 몇 개 집어 먹는다. 조용한 공간 덕에 바삭함과 향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던 맛이, 여기서는 입안에서 분명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비로소 알게 됐다. 늘 먹던 과자였기에 차이를 알아차릴 기회가 없었을 뿐, 한국 여행 후 미국에서 봉지를 뜯으면서 그 간극이 확실히 드러났다.
지금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 한국 새우깡 먹고 싶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경험도 나름 색다른 맛이 된다. 같은 이름과 봉지지만, 환경과 유통 과정에 따라 달라진 실제 맛을 체험한 것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맛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를 느끼는 순간, 나 역시 예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여전히 손은 가지만, 이제는 그 안에 조금 더 많은 이유와 웃음 포인트가 들어 있다. 한국에서의 추억, 미국에서의 낯선 경험, 그리고 과자 하나를 통해 깨닫는 작은 관찰과 감정까지.
이 정도면 새우깡도 명백한 이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