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와 삼각형의 맛

빨대를 꽂는 순간, 기억이 시작된다

by Susie 방글이




마트 진열대 앞, 바나나맛 우유와 커피우유가 종이팩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눈길이 머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좋아했던 건 단지 내용물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손에 감기는 둥근 항아리, 미묘한 탄력,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작은 추억과 기대감까지, 모든 것이 맛의 일부였다.


바나나맛 우유를 떠올리면, 손에 감기는 둥근 항아리의 부피감, 살짝 눌렀을 때 돌아오는 얇은 플라스틱의 탄력, 짧고 얇은 빨대를 빨아올리는 소리까지 함께 떠오른다.


삼각 커피우유도 마찬가지다. 커피 맛을 떠올리기 전에, 미끄러운 비닐의 촉감과 손바닥에 닿던 차가운 피라미드가 먼저 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항아리 모양 바나나우유랑, 삼각형 커피우유는 꼭 그걸로 마셔야 제맛이야."


겉으로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안에 들어 있는 건 결국 비슷한 바나나맛, 비슷한 커피우유 아니야? 종이팩에 담겨 있든, 항아리에 담겨 있든, 삼각형이든 네모든, 기분 탓이지."


하지만 한 모금을 마셔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기분이라는 건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손으로 느끼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과도 가까운 것이다.


입안에 먼저 닿는 건 내용물이지만, 그 내용물이 입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를 둘러싼 건 병이나 팩의 모양, 재질,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도, 그리고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라는 작은 기대감 같은 것들이다.


우유의 포장은 맛에 영향을 준다. 유리병 우유가 종이팩보다 더 신선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노스탤지어만은 아니다. 종이팩은 종이 특유의 냄새와 공기층을 갖고 있고,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액체와 공기를 다룬다.


실제로 같은 브랜드라도 병 제품과 종이팩 제품은 당도나 향의 강도가 조금씩 다르게 조정된다. 똑같은 국물이라도 뚝배기에 담겼을 때와 일회용 종이그릇에 담겼을 때의 온도와 냄새가 다른 것처럼, 그릇은 이미 맛의 일부다.


둥근 항아리, 노란 향기, 기억 속 한 컷. 목욕를 하러 목욕탕을 가는건지, 이 우유를 마시기 위해 목욕을 가는건지…


뜨거운 목욕 후, 차가운 삼각 커피우유 한 모금. 이게 제맛이지


종이팩에 담겨도 맛은 비슷할 수 있지만, 기억 속 삼각형 커피우유의 느낌까지는 담아낼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항아리 바나나 우유를 볼 수 없다. 종이팩으로 대신하지만, 맛은 같아도 손맛과 추억까지는 담을 수 없다.


여기에 추억이 얹힌다. 항아리 바나나우유와 삼각 커피우유는 언제 어디서든, 길을 걷다가 꺼내 마시던 순간, 목이 마른 찰나의 즐거움과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 용기의 모양과 재질은 이미 맛의 일부다.


짧고 얇은 빨대를 통해 느껴지는 손끝과 입술의 감각, 음료의 차가움과 몸의 온기가 섞인 느낌, 그리고 공기 속에 은근히 스며든 습기까지도 함께 남아 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마시던 시간, 그 조용한 만족감까지 그대로 기억된다.


작년 여름,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공항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사 마셨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괜히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형 커피우유가 보이면 꼭 사서 마셨다. 손에 감기는 모양, 빨대를 꽂아한 한 모금 빨아올리는 느낌, 음료와 함께 스며든 작은 추억들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였다.


기업들은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굳이 항아리와 삼각형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모양 자체가 '특별함'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맛은 내용물만이 아니라, 그걸 둘러싼 패키지 전체에서 시작된다.


이건 다른 거라고.


용기는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는 기억이 된다.


그래서 "종이팩에 담긴 것도 결국 같은 맛 아니야?"라는 질문은 결국 이렇게 바뀐다. 맛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맛은 혀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둥근 항아리 바나나우유는 손에 쏙 들어와 잡기 편하지만, 삼각형 커피우유는 솔직히 손에 잘 맞지 않는다.


그래도 빨대를 꽂아한 모금 빨아올리는 순간, 손끝과 입안으로 전해지는 느낌과, 마시기 직전까지 차오르는 기대감에서 이미 맛은 시작된다.


항아리와 삼각형, 각자의 모양은 우리에게 그 기대감의 형식을 알려준다. 아마 정답은 이 정도일 것이다. 종이팩에 담긴 것도 비슷한 맛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맛은, 그걸 둘러싼 모양까지 포함된 패키지 전체다.


그럼에도 난 미국에서 종이팩에 담긴 우유를 산다. 맛은 비슷하게 재연되지만, 손에 닿는 느낌과 기대감, 작은 추억의 조각들은 조금 아쉽다.


미국에는 없는 항아리, 종이팩에 그림으로만 남았다.


타국에 살면서,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항아리 바나나 우유, 삼각형 커피우유. 어쩌면 그 안의 내용물보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손이 가요 손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