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과의 전쟁
유통기한 하루 지난 우유, 어떻게 할까요?
냉장고 문을 열다 보면 누구나 맞닥뜨린다.
유통기한 하루 지난 우유를 손에 들고 '먹을까, 버릴까'고민하는 순간.
'이걸로 내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한국에선 답이 1초 만에 정해진다. "유통기한 지났네? 버려."
하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냄새 맡아봐. 괜찮으면 먹어!"
한국인에게 유통기한은 믿음의 근거다. 편의점 삼각김밥에도 '2025.05.21 14:23 제조'라 적혀 있다. 몇 시간 지나면 직원들이 세일 스티커를 붙이며 시간과 전쟁을 벌인다. 한국에서 딸이 초등학교 때, 동네 편의점에서 할인된 삼각김밥을 사 먹으려다 "유통기한 30분 남았다"며 나한테 혼난 적이 있다.
"그건 이미 상한 거나 다름없어!"
한국은 왜 이렇게 유통기한에 집착할까? 습한 여름, 건조한 겨울, 미세먼지 가득한 봄, 그리고 여러 명이 숟가락을 돌려 먹는 찌개 문화 탓에 음식이 쉽게 상한다. 자연스레 유통기한은 '안전 마지노선'이 됐다.
1970~80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로 전통적인 '눈으로 보고 먹을지 판단'하는 방식은 줄어들고,
대량 유통 시대에 날짜가 안전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집단주의적 식문화도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을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유통기한을 철저히
지키며, 날짜가 지나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바로 버린다. 미국의 "냄새 괜찮아!" 태도와는 딴판이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와 소비기한 제도 덕에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반면 미국은 대륙의 스케일답게 유통기한도 느긋하다. 대량생산과 더불어 발달한 냉동·냉장 기술 덕에 식품이 쉽게 상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됐다. 개인주의적 식문화는 ‘내가 먹을 음식은 내가 판단한다’는 태도를 키웠고, FDA (미국의 식약청)의 유연한 가이드라인도 날짜를 ‘참고용’ 정도로만 여기게 한다.
문제는 마트에 가면 Sell By, Best By, Use By, Expiration Date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이라면 "도대체 언제까지 먹어도 되는 거야!"라며 당황할 법하다. 나도 여전히 헷갈린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유통기한 표기를 설명해 주는 가이드까지 등장했다.
미국의 유통기한 표기는 이렇게 나뉜다.
Best if Used By/Before :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는 기간
Sell By : 소매점이 진열해 둘 수 있는 판매 기한 (이후에도 섭취 가능)
Use By :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마지막 날짜 (특히 유제품 등)
Expiration Date : 약이나 일부 제품의 절대 섭취 기한
그런데 'Best By'는 언제쯤이 'best'인지 애매하고, 'Sell By'는 나보고 사라는 건지, 가게에서 팔라는 건지, 누구에게 해당되는 사항인지 헷갈린다. 미국에선 음식도 마치 각자 사연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유통기한을 들이민다. 그래서 미국에서 장을 보다 보면 마치 각 나라 음식 문화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Freeze By'라는 것도 있다. 말 그대로, 그 날짜까지는 냉장고에 두다가, 이후엔 얼려도 된다라는 뜻이다. 음식도 성격이 달라서, 어떤 건 바로 먹으라 하고, 어떤 건 냉동실로 들어가서 겨울잠 자라는 거다. 이쯤 되면 미국이 '다양성의 나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사람들은 유통기한에 느긋하다. 냄새 맡고, 맛보면 다 괜찮다고 믿는다. 대학교 때 미국 친구 아파트에 놀러 갔을 때, 'Use By' 날짜가 지난 우유를 보고 "이거 버려야지!" 했더니, 친구가 "냄새 괜찮아!"라며 태연히 시리얼에 부었다. 호기심에 따라 해 봤다가 배탈로 하루 끙끙댔다. 내 한국식 위장은 그 자유로운 태도를 못 따라갔다.
심지어 바닥에 음식이 떨어져도 3초 안에 주우면 세균이 안 묻는다는, 과학적 근거 없는 ‘3 Second Rule' (3초 룰) 전설도 있다. 사탕 껍질 까다 떨어뜨리면 친구가
"어? 사탕 떨어졌네!" 하며 바로 주워서,
"3초 룰!" “괜찮아, 먹어!" 하며 태연히 먹었고, 나는 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요즘은 남편이 라떼용 우유 냄새를 킁킁 맡거나, 과자를 떨어뜨리고 "3초 룰!"이라며 장난치는 모습이 재미있다.
라떼 맛을 좌우하는 우유라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예전엔 이런 미국식 낙천주의가 낯설었지만, 이제는
귀엽게 느껴진다.
결국 유통기한 하나에도 기후, 역사, 식문화가 녹아 있다. 한국은 신선함이 생명이라 유통기한을 철저히 지키고,
미국은 코와 혀, 그리고 3초 스피드를 믿는다.
오늘 저녁, 냉장고 앞에서 유통기한 하루 지난 요구루트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1.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2. 버리기 아까워 일단 놔뒀다가 며칠 뒤 결국 버리기
3. 혹시 몰라 얼려놓기
4. 냄새 맡아보고 괜찮으면 흡입
그리고 땅에 사탕을 떨어뜨렸다면 3초 안에 주워서 먹게 될 수도.
1,2,3번 중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다.
음식에도, 유통기한에도, 떨어진 사탕에도 문화가 있으니까.
"각자의 스타일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