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모르면 벌금, 알면 웃음
미국에 살면 입에 붙는 말이 있다.
"그게 법이야?"
미국은 하나의 통일된 나라라기보다는 50개 주가 각기 다른 규칙과 특성을 가진 거대한 연합체에 가깝다. 주마다, 심지어 지역마다 규정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처럼 전국이 단일한 규칙으로 운영되는 환경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번 "이게 허용되는 건가?"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에선 집 마당의 나무를 자를 때 허가를 받으라는 말도, 공원에서 새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지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선 작은 행동 하나도 지역 규정을 확인하지 않으면 자칫 벌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3월, 우리 집은 오래된 사이딩을 새로 교체하며 깔끔한 외관을 되찾았다. 흐뭇하게 집을 바라보며, 이번엔 오랜 숙제인 뒷마당의 낡은 데크를 새롭게 단장할 계획을 세웠다. 삐걱대는 나무상판을 교체하고, 새 페인트로 마무리할 생각에 견적을 알아보려 콘트랙터를 집으로 불렀다. 그런데 대화 중에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선 집 외관 바꾸는 공사, 예를 들어 사이딩 같은 건 타운십에 허가를 받아야 해요."
"허가요? 제 집인데 왜 허가를 받아야 하나요?"당황한 나를 보며 컨트랙터는 익숙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는 서류 가방에서 허가 신청서 샘플을 꺼내 보여주며 장난스레 덧붙였다.
"이거 없으면 큰일 납니다. 벌금 맞고 공사 되돌리는 집도 봤어요."
그는 차분히 설명했다. 이 타운에서는 사이딩, 지붕 교체, 마당 나무 제거, 심지어 데크에 페인트 칠하는 것까지 모두 사전에 타운십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이를 어기면 벌금은 물론, 공사를 원상 복구해야 할 수도 있다. "규정은 마을 전체의 미관과 질서를 위한 거예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순간, 방금 끝낸 사이딩 공사가 허가 없이 진행된 사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컨트랙터는 내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타운십이 아직 모르면 다행이죠"라며 윙크했다.
다행히 아직 타운십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넘어간 것 같지만, 몇 년 전 뒷마당의 큰 나무를 허가 없이 자른 일이 떠올랐다. 당시엔 "우리 집 나무인데 뭐 어때?"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미국에 살다 보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주마다, 도시마다 규칙이 다르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국은 법과 규제가 전국적으로 통일돼 움직이는 편이지만, 미국은 각 주와 시의 사정과 문화에 따라 제각각인 법이 존재한다. 어떤 법은 환경이나 이웃 간 평화를 위한 것이고, 어떤 법은 듣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중 몇몇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거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공공장소에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을 쓰면 벌금. 지난여름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더위에 지쳐 편의점에서 플라스틱 물병을 샀다가 카페 직원의 “재사용 텀블러는 없나요?”라는 눈초리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환경 보호를 위한 법이지만, 여행객에겐 낯선 규칙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할인받는 모습이나, 환경을 생각해 예쁜 텀블러를 개성 있게 꾸미는 트렌드를 보면, 이 샌프란시스코의 법이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공감 갈 만하다.
뉴욕주, 뉴욕시: 밤 10시 이후 아파트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벌금. 샤워 중 신나게 BTS를 부르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이 법은 노래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파트에서의 전반적인 소음을 규제하는 조치다.
한국에선 아파트 생활이 흔해 층간소음이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밤늦게 뛰는 소리나 세탁기 돌리는 소리로 이웃과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이 뉴욕의 법이 꽤 공감 갈지도 모른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카고에선 공원에서 비둘기한테 밥 주는 게 불법이라, 빵 부스러기 던지다 경찰한테 경고받거나 최대 $500 벌금 맞을 수 있다.
한국은 2025년부터 비둘기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한테도 공원이나 일부 사유지에서 먹이 주면 안 되고, 위반하면 최대 100만 원 과태료 내야 한다. 둘 다 비둘기 똥 때문에 골치 아픈 건 비슷하지만, 한국은 생태계 보호까지 신경 써서 규제가 더 힘들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황당 법들이 숨겨져 있다. 한국 사람에게 생소한 건 물론이고, 미국 친구들도 듣고 나면 "말도 안 돼!" 할 법들이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이건 정말 황당한 법인데,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방귀를 뀌는 게 불법이다. 1920년대 공중위생법에서 유래한 이 법은 공공장소에서의 소음과 “공기 오염”을 막기 위한 것으로, 현대에는 거의 집행되지 않지만 여전히 법전에는 남아 있다. 해변에서 친구들과 웃다가 실수로 방귀를 뀌면, 주변 눈초리뿐 아니라 벌금까지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또 하나의 황당한 법, 집에서 배우자의 머리를 허가 없이 자르는 건 불법이다. 미용사 면허를 보호하려는 오래된 규정으로, 집에서 배우자의 머리를 자르는 행위를 금지한다. 팬데믹 시기 집에서 이미용이 늘며 이 법이 주목받기도 했다. 낭만적인 가위질 한 번이 벌금으로 이어질 줄이야!
캘리포니아주, 아카디아: 이건 듣고도 믿기 힘든 황당한 법인데, 일요일에 공공장소에서 껌을 씹는 것이 금지다. 1900년대 초 거리 청결을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껌을 뱉는 행위를 막으려는 의도다. 오늘날 집행은 드물지만, 지역 법전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껌을 씹다 경찰의 제지를 받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이런 독특하고 황당한 법들은 실제로 엄격하게 집행되기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수십, 심지어 수백 년 전 특정 지역의 사회적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법들로, 당시에는 합리적이었을지 몰라도 현대에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이런 법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주로 입법 과정의 관성과 우선순위 때문이다. 법을 폐지하려면 주 의회의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고, 이 과정은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만큼 복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오래된 법들은 대부분 실제로 적용되지 않으며, 지역 주민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이런 법들이 지역의 독특한 역사나 문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유산으로 여겨지며, 관광 안내서나 가벼운 대화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런 법들은 현대 사회에서 실질적인 구속력보다는 미국의 다양한 지역적 색깔과 과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미국에 살면서 깨달은 건, 법은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집은 다행히 HOA (Homeowners Association) - 주택소유자협회라는 이름으로 동네를 감시하며 잔디 깎는 날짜부터 데크 페인트 색깔까지 간섭하는 그 깐깐한 이웃 단체 - 가 없지만, HOA가 있는 곳에 살면 이야기가 다르다. 타운십의 허가 규정은 물론 HOA의 터무니없는 룰을 무시했다간 벌금은 물론, "그 데크 색상, 우리 동네 분위기랑 안 맞아!" 같은 골치 아픈 상황에 휘말릴 수 있다.
가령, 우리 집 낡은 데크를 고치려 했던 일이 HOA가 있는 동네라면, 페인트 색상 승인부터 받으라는 통보에 막혀 시작도 못 했을 거다. 미국에서는 이런 기묘한 법들과 규정 덕분에 망치를 들기 전에 일단 타운십에 전화부터 걸어 확인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를 하기 전에 혹시 있을 타운십이나 동네 규정을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갈 땐 재사용 물병 안 챙겼다간 환경 경찰 눈총 받을까 봐 가방부터 뒤진다. 뉴욕에선 밤 10시 이후 노랫소리 키우다간 이웃한테 "조용히 해!" 소리 들을까 봐 볼륨부터 내린다. 플로리다 해변에 간다면? 괜히 방귀 뀌었다가 "공공 예절 위반"이라며 민망한 꼴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디트로이트에선 가위 들었다가 "미용실로 가!"라며 쫓길까 봐 그냥 미장원으로 직행한다.
미국 생활은 단순히 법을 아는 것 이상으로, 그 법이 만들어진 배경과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컨트랙터의 장난스러운 윙크와 샌프란시스코 직원의 눈초리가, 이 까다로운 규정 속에서 미국의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했다. 여러분은 집에서 무심코 한 일이 규정에 걸린 적이 있나요? 혹시 미국으로 오실 분들이 계신다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법을 알면 미국이 보이고, 미국을 보면....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