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나무로 채우는 자투리 예술
나비효과 때문이었다.
동아시아에서 묻어온 작은 벌레 하나가 우리 집을 이렇게 바꿀 줄 누가 알았을까.
미국과 중국의 교역이 활발해지던 무렵, 수입품 나무 포장재에 숨어든 비단벌레(EAB. Emerald Ash Borer)가 미국 전역의 물푸레나무(Ash Tree)를 초토화시켰다. 미국 전역에 수억 그루의 나무가 죽어 나갔다. 10여 년이 지나 우리가 사는 지역에도 벌레의 습격이 본격화 됐고, 집 뒤뜰의 멋진 물푸레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던 그 나무가 잎이 적어지고 시들해지더니 급기야 2년 후에 고사하고 말았다. 처음엔 이유도 모른 채,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나무를 베어내며, 그 안타까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쉬움에 그렇게 잘린 통나무를 뒷마당에 쌓아두고 며칠을 보내다 문득,
"이왕 이렇게 된 거, 통나무로 의자나 만들어보자."며 남편이 말했다.
체인톱 한 자루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곧 손도끼, 샌딩 기계, 조각칼까지 공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착했다. 공구 가 쌓일 때마다 이게 아닌데 싶은 내 의구심은 제곱으로 커졌다. 과연 어디까지 목공구가 늘어갈지... 하지만 남편의 열정은 멈출 줄 몰랐다. 거칠게 다듬은 원목이 제법 근사한 의자로 변신했을 때, 나도 살짝 감탄했다.
"오, 제법인데?" 내 말에 남편은 장인의 영혼이 깃든 듯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의자 하나로 끝날 줄 알았던 프로젝트는 어느새 차고를 집어삼켰다. 유튜브를 찾아가며 도면을 그리고 목공 작업대를 만들더니 촛대, 스툴, 벽시계, 와인 렉, 캔디 디쉬까지. 새 공구와 재료를 끊임없이 주문했고, 차고는 나무 부스러기와 공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손재주가 좋다고는 하나 목공의 '목'자도 모르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 엄청난 공구값은 비밀.
그 와중에 내가 저지른 일이 있었다. 남편이 만든 작품 중 하나, 그가 "망했다!"며 구석에 던져놓은 촛대를 몰래 지인에게 선물한 것이다. 솔직히 내 눈엔 제법 멋스러웠다. 투박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그 촛대. 남편은 성에 안 찼는지 "이건 실패작이야"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선물 받은 지인은 눈이 동그래져서 "이거 너무 멋지다!"라며 감탄했다. 남편 몰래 선물한 게 살짝 미안했지만, 지인의 반응을 보니 뿌듯함이 더 컸다. 어쨌든, 내 눈에도 좋아 보였으니까!
스툴 프로젝트도 잊을 수 없다. 살짝 기우뚱한 첫 스툴은 남편이 "빈티지 스타일"이라 우겼고, 나름 매력적이었다. 그 뒤로 5개를 더 만들어 제법 잘 쓰고 있다. 나무용 래커와 시계 부품까지 주문하여 만든 벽시계는 솔직히 근사했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남편을 보니, 차고를 작업실로 만든 보람이 있었다.
이제 우리 집은 '목공 갤러리'라 불러도 손색없다. 어제는 남편이 "나무 커피 테이블 어때?"라며 스케치를 시작했다. 나는 장난 삼아 차고에 'Caution: Child at Play' (어린이 놀이 주의) 간판을 내걸었다. 이웃들은 "목공소 오픈했나?"라며 농담을 던지고, 남편은 "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어!"라며 또 무언가를 구상한다. 공구 배달 트럭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한다. 다음은 뭐가 될까? 나무 샹들리에?
그런데 최근엔 일이 더 커졌다. 남편이 동네를 돌며 죽어 쓰러진 나무를 찾아 이고 지고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비버가 강가에서 나뭇가지를 물어오는 듯한 그 모습! "재료가 떨어졌어!"라며 눈을 반짝이며 나무 사냥에 나선다. 또 어떤 작품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나뭇가지를 어깨에 짊어지고 씩씩대며 돌아오는 남편을 보면, 웃음이 터지면서도 살짝 감탄스럽다. 이쯤 되면 우리 집은 목공 갤러리를 넘어 나무 수집소가 아닌가 싶다. 차고는 차를 대라고 차고가 아닌가?
작은 벌레 하나가 우리 집을 이렇게 바꿔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물푸레나무를 잃은 슬픔은 이제 남편의 열정과 나무 부스러기로 뒤덮인 차고, 그리고 우리만의 특별한 목공 갤러리로 바뀌었다.
나비효과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너의 희생이 또 다른 이쁨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