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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보여

어디서나 통하는 게 아니다

by Susie 방글이





언어는 문화다, 문화는 언어다


"엄마, 왜 한국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꼭 살쪘네, 빠졌네, 피부는 왜 그러냐부터 말해?"


미국에 와서 예민한 시절을 보내던 딸아이가, 집에 온 내 직장 동료와 인사하고 나서 내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 특유의 그 '정'이라는 분위기가 낯설다고 했다. 나는 "그게 정이야" 하고 얼버무렸지만, 솔직히 왜 그런지 딱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어릴 때부터 늘 봐온 모습이라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선 오랜만에 만나면 외모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살 빠졌네!"(무슨 일 있었니? 잘 지냈어?)


"피부 좋아졌다!" (컨디션 좋아 보인다, 요즘 괜찮지?)


"피곤해 보여!"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이런 식이다. 한국의 이런 표현은 공동체적 문화에서 비롯된 관심의 표시다. 상대방의 변화를 세심히 살피며 근황을 묻는 방식인 셈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는 문화 탓에 외모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러운 편이다. "You look great!" 같은 무난한 칭찬이 대부분이고, 체중이나 피부 상태 같은 민감한 부분은 웬만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상대방이 아무리 피곤해 보여도 "You look tired." 같은 말은 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말이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흔히 주고받는 "피곤해 보여", "살 빠졌네", "얼굴 좋아졌네" 같은 인사는, 미국 문화에 익숙해져가던 딸한테는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미국에선 대화의 시작이 날씨라면, 한국에선 얼굴 컨디션 체크라는 사실을, 딸은 알게 됐다.

날씨는 대화의 문을 열어준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계 회사라 회의나 중요한 일 앞두고 한국인 직원들은 "자, 오늘도 화이팅! 하며 손뼉을 치는 게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스포츠 문화에서 유래한 이 구호는 팀워크와 열정을 북돋는 응원의 상징이다. 한국 문화를 모르는 신입들은 늘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인다.


"Why do you guys say ‘Fighting’? Who are you fighting with?"

(왜 '화이팅'이라고 하나요? 누구랑 싸우는 건가요?")


나는 "그게 싸우자는 게 아니고, 힘내자, 잘해보자라는 뜻이야. Good luck이나 You got this 같은 거지"라고 설명했다. 설명 후엔 미국 직원들도 조금씩 이해했는지, 가끔 어색하게 "화이팅"을 따라 하기도 한다.

'파이팅'을 외치게 하는 축구 - 너무 쉽게 이긴 경기 2016 올림픽 (8-0)

또 하나 기억나는 표현은 '눈이 높다'다. 한국에서는 이상형이나 결혼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면 "쟤는 눈이 높아서"라고 한다. (너무 까다로워서 평생 혼자 살 수도 있어.) 대개 걱정 반, 핀잔 반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You have high standards'라고 하면 반응이 정반대다.


"Good for you!"

"Of course you should have standards."

(그게 왜 문제야, 네 기준대로 살아야지.)


오히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며 칭찬이 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자기 기준을 지키며 사는 걸 긍정적으로 보는 문화다.


나는 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한국적인 표현과 정서가 여전히 더 편하다. 그렇다고 미국 문화가 낯선 건 아니다. 상황에 맞게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언어보다 문화를 설명하느라 더 바쁠 때도 있다.


'화이팅'은 싸우자는 게 아니라 팀워크를 북돋는 응원이고,

'살쪘네'는 악의가 아니라 관심이고,

'피곤해 보인다'는 "어디 아프니? 요즘 힘들었니?"라는 안부이고,

'눈이 높다'는 까다롭다는 걱정 섞인 표현이다.


결국, 언어는 문화고, 문화는 언어다. 표현 하나, 인사법 하나에도 그 사회의 생각과 정서가 담겨 있다. 그래서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단어 뜻을 외우는 게 아니라,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이해하는 여정이다.


다문화 환경에서는 낯선 표현에 당황하지 말고, 그 뒤의 의도를 물어보거나 맥락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로의 문화를 조금씩 이해할 때, 언어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말은 가벼워도, 생각은 깊게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들 중에는 한국에서는 긍정적으로 들리지만, 영어권에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영어로는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한국어로 옮기면 어딘가 차갑고 서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역이나 번역을 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과 분위기를 잘 살려야 한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에 오해도 많고, 그만큼 재미도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래에 그런 표현 몇 가지를 정리해 봤다.


한국에서는 긍정/칭찬 - 영어권에서는 부정/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


"애썼다"

한국어 의미: 노력한 것을 인정하며 긍정적으로 격려하는 표현.

영어권: "Nice try" 또는 "You tried"는 영어권에서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위로하거나 약간 비꼬는 뉘앙스로 들릴 수 있음.


"잘될 거야"

한국어 의미: 위로하거나 희망을 주는 낙관적인 표현.

영어권: "It’ll be fine" 또는 "Things will work out"은 맥락에 따라 너무 가볍거나 무책임한 위로로 들릴 수 있음, 특히 상대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얼굴 많이 탔네

한국어 의미: 야외활동 많이 했구나, 건강해 보인다는 의미

영어권: 인종차별 뉘앙스로 오해 가능, 절대 외모·피부색 언급 금기


"그거 별로 안 어려워"

한국어 의미: 상대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하거나, 부담을 덜어주려는 긍정적인 의도로 사용

영어권: 'That’s not that hard"로 상대의 노력이나 어려움을 사소하게 치부하거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듯한 뉘앙스로 들릴 수 있음. 특히 경쟁적인 상황에서는 무시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음.



반대로, 영어권에서는 자연스러운데 한국어로 직역하면 좀 차가운 느낌


"I need some space."

영어 뉘앙스: 감정 정리 시간 필요

한국어로 직역 시: 나한테서 떨어져 로 들릴 위험 (너 싫어' 라는 뉘앙스)


"That's interesting."

영어 뉘앙스: 애매하거나 의외일 때

한국어로 직역 시: 그게 뭐가 흥미롭지? 약간 비꼬는 듯


"I'll think about it."

영어 뉘앙스: 거절의 완곡 표현

한국어로 직역 시: 한국에서는 진짜 고민하는 걸로 오해 가능


"I don’t mind."

영어 뉘앙스: "상관없어" 또는 "괜찮아"라는 뜻으로, 상대의 제안이나 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냄. (예: "여기 앉아도 돼?"에 "I don’t mind."은 허락의 의미)

한국어로 직역 시:"상관없어." 직역하면 무관심하거나 성의 없어 보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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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같아도,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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