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작아지는가?
간단한 아침 식사, 커피 한 잔과 베이글을 사러 집 근처 새로 오픈한 힙한 카페에 갔다. 테이크아웃이라 주문만 하고 계산하려는데, 예상했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직원이 계산을 마치더니 익숙하게 iPad를 내 쪽으로 돌린다. 화면에는 익숙한 질문이 적혀 있다.
'Tip: 18% / 20% / 25%/No Tip/Custom'
심지어 15%도 없고 18%부터 시작이다.
그 순간,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 난리가 난다.
'No Tip'을 누르면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쩨쩨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뒤에 있는 사람의 시선, 계산대 직원의 미묘한 표정, 그리고 나 자신과의 내적 갈등. 커피 한 잔 사면서 이렇게까지 복잡한 감정을 겪을 일인가 싶다.
결국 줄 선 사람들의 기척에 18%를 누르고 만다. 누르고 나면 또 그 찝찝한 기분. '이걸 왜 눌렀지…'
가끔은 내가 줄 팁은 내가 정하자 해서 "Custom"을 눌러 팁을 직접 입력하려면 오히려 계산이 더 느려진다. '아, 이거 좀 빨리 누르고 싶은데…'하면서 급히 아무 옵션이나 눌렀다가 팁이 20%로 가는 걸 보고 '아, 낭패다!' 하는 순간이 있다.
정말로 커피 한 잔에 필요한 건 용기일까, 아니면 계산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간절함일까. 이런 아이러니도 있으니, 커피 한 잔 살 때마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다.
사실, 요즘은 테이블 서비스도 아닌 단순 테이크아웃인데 팁을 요구하는 이 문화가 당연하게 굳어졌다. 도대체 왜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에도 팁을 요구하는 걸까? 이 문화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더 어이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서버들의 최저임금이 워낙 낮다. 법적으로 일반 시급보다 훨씬 낮게 책정돼 있어서 손님이 주는 팁이 사실상 월급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팁 문화의 뿌리가 어디서 왔나 보면,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도로부터 해방된 흑인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 팁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만든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남북전쟁 이후라니, 커피 한 잔 사면서 이렇게 무거운 역사를 떠올릴 줄 누가 알았겠나.
나는 짠순이가 아니다. 밥 먹고, 맛있었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면 기분 좋게 20%도 주고, 칵테일바에서 친절한 바텐더에게는 25%도 쿨하게 얹는다. 근데 테이크아웃은 솔직히 고민된다.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잘 마셔~' 하고 종이컵에 건네는 것이 전부인데, 그 순간 팁을 요구받으면 어쩐지 억울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현금을 일부러 들고 다닌다. 카드 내밀 때 돌려지는 그 iPad가 너무 싫어서. 현금으로 "여기 있어요" 하고 주면, 그 어색한 화면도 없고,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도 없다. 그냥 계산 끝. 그게 이렇게 편한 일이었나 싶다. 사실 이 팁의 압박은 커피숍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일상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우리 강아지 미용하러 가서 '혹시 팁 안 주면 다음엔 우리 아기 털 다 뽑아놓는 거 아냐?' 그 불안감에 결국 또 지갑을 열고 만다.
미국 사람들도 이 끝없는 팁 문화에 점차 지치기 시작했다. 테이크아웃에, 셀프서비스에, 심지어 패스트푸드에도 팁이 붙으니까 "이거 너무 과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최근엔 소셜 미디어에서도 '테이크아웃 팁은 과하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심지어 일부 패스트푸드 체인에서는 팁 옵션을 없애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서비스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사회적 압박이 되어버린 거 같다. 이런 팁 문화의 피로감에 지쳐갈 때쯤, 한국에 오니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다.
한국에선 이 눈치 싸움으로부터 완전 해방이다. 아무리 비싼 커피를 시켜도, 무엇을 먹어도, 계산은 딱 가격 그대로.
아무도 팁을 요구하지 않고, 안 줬다고 기분 나빠할 일도 없다. 계산서엔 오직 주문한 음식값만 적혀 있다. 그걸 보며 나는, 세상 편한 마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커피 한 잔에 대한 진짜 팁은, 고마운 마음으로 건네받으며 맛있게 마시는 그 순간에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