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홀튼도 소박할 때 빛난다
이 이야기는 원래 쓸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한국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어서 쓰게 됐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확실히 깨달았다. 한국은 진짜 대단한 나라다. K-드라마가 넷플릭스 차트를 씹어 먹고, K-푸드는 뉴욕 뒷골목까지 파고들었다. 미국 애들이 'BTS 보러 서울 가고 싶다!'며 눈을 반짝인다. 그런데 왜 정작 한국은 외국 브랜드만 보면 고급화시키며 허리를 깊이 숙일까?
캐나다 국민 커피 브랜드 팀 홀튼(Tim Hortons)이 한국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잠시 설렜다. 캐나다에 여행 가면 늘 마시던 국민 커피를 한국 가면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매장수는 많지 않지만 미국에서도 팀 홀튼은 소박한 동네 커피숍이다. 도넛 하나, 커피 한 잔 3달러에 동네 아저씨들이 "오늘 좀 춥네"하며 수다 떠는 그런 곳. 한국으로 치면 '김밥천국' 같은 서민의 친구다.
근데 한국 팀 홀튼? 완전 다른 차원이다. 반짝이는 인테리어, 인스타 감성 소품, 메뉴판엔 ‘프리미엄’이 듬뿍. 가격표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마시면 갑자기 내가 맨해튼 카페족 되는 건가?"팀 홀튼은 캐나다에선 맥도널드 커피보다 싸고 서민적인 브랜드 아니었나? 한국에 와서 갑자기 강남 재벌 코스프레라니?
팀 홀튼은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팀 홀튼이 만든 소박한 가게다. 경기 끝나고 도넛 하나 까먹으며 "인생 참 재밌어" 하던 그런 문화의 산물. 캐나다에선 "커피 한잔?" 하면 "팀 홀튼 갈까!"가 정답이다. 근데 한국에선 이 도넛 아저씨가 갑자기 '럭셔리 바리스타'로 변신했다. 귤이 태평양 건너왔다고 갑자기 천해향이 되는 꼴이다.
솔직히 말하자. 이거 좀 웃기다. 아니, 창피하다. 미국에서 보니 한국은 이미 세계 톱 티어다. 뉴욕 카페? 솔직히 강남 카페보다 촌스럽다. 미국 동네 맛집? 한국 골목식당이 훨씬 맛있다. 24시간 편의점, 새벽 배달, 지하철 와이파이? 미국은 꿈도 못 꾼다. 한국은 이미 충분히 세련되고, 충분히 쿨하다. 그런데 왜 팀 홀튼 같은 외국 브랜드를 금칠해 띄우는 걸까?
오히려 미국에서는 한국적인 게 더 인기다. 냉동 김밥이 동나고, 한식 냉동 음식이 불티나게 팔리고, 기사식당도 줄을 서서 먹는다. 건강하고 맛도 풍부한 한국 음식과 문화가 현지인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고 있다. 더 이상 한국은 외국 브랜드를 번쩍번쩍 포장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며칠 전, 편의점에 들렀다. 내 앞에 있던 외국인 두 명이 또렷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계산을 했다. 내 차례가 되자 직원분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요즘 외국분들이 한국말을 참 잘하세요."
나도 덩달아 웃으며 대답했다.
"네, 요즘은 K-문화가 대세잖아요."
직원분도, 나도 괜히 뿌듯해진 순간이었다.
이제 한국은 떡볶이로도, 김밥으로도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다. 굳이 캐나다 커피와 도넛을 '프리미엄'으로 포장할 필요 없다. 팀 홀튼은 그냥 팀 홀튼일 때 제일 맛있다. 동네 아저씨들이 커피 마시던 그 소박한 맛,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프리미엄이 필요 없는 그 소박함의 맛을 즐길 때다.
귤은 귤로, 팀 홀튼은 국민 커피일 때 제맛이다
커피는 핑계, 사람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