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복판, 그놈들
"어어어어 어!"
갑자기 브레이크가 ‘끼익’ 소리를 내며 차가 앞으로 확 쏠렸다.
나는 허리를 꽉 조인 안전벨트에 목이 눌릴 뻔했고, 옆자리에 앉은 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앞을 가리켰다.
"우아~우아~우아!! 엄마!! 아빠!! 저 거봐, 저 거봐!!" 딸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래 동영상 링크 있어요~)
뭔데, 뭔데! 나도 덩달아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나타난 건… 당나귀 무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회색빛, 갈색빛 털에 먼지를 뒤집어쓴 녀석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어슬렁어슬렁,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뭐야!"
딸은 거의 창문에 얼굴을 붙이다시피 하며 우와우와를 연발했다.
"어머머머, 진짜 당나귀야!! 야생 당나귀, 당나귀!!"
솔직히 나도 입이 떡 벌어졌다.
사막 한가운데 야생 당나귀라니. 이게 진짜냐.
잠깐, 여기가 어디라고?
캘리포니아.
우리가 흔히 아는 푸른 해변과 야자수의 캘리포니아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캘리포니아는 대개 맥주 한 잔 들고 바닷가에 앉아 석양을 보는 장면쯤이겠지만, 우리가 달리던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복판이었다.
사막.
말로 설명하려니 답답하다.
사진으로도 절대 다 담기지 않는 풍경.
갈색과 황톳빛의 대지가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고, 바람조차 움직이지 않는 고요.
사방을 덮은 뜨거운 공기가 마치 투명한 커튼처럼 아지랑이를 일으켰고,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 그 광경은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황량한데 경이롭고, 텅 비었는데 가슴이 꽉 차는 기분.
여기까지 와야만 볼 수 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당나귀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당나귀를 사막 한복판에서 만날 줄은.
우리 여행 리스트에는 없었다.
딸은 가방을 허겁지겁 뒤적거리더니 새우깡을 꺼냈다.
"얘네… 이거 먹을까? 우아아아~~ 얘들아, 우깡 먹을래?"
창문을 살짝 내리고 손에 들린 우깡을 흔들자,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온다 온다 온다!! 어머어머, 얘 온다!!"
딸이 거의 반쯤 소리를 지르며 창밖으로 새우깡을 내밀었다.
그걸 '와삭' 소리 내며 씹어 먹는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머지 녀석들이 우르르 차 옆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셋 다 그 광경에 웃음이 터졌다.
새우깡 먹는 당나귀라니. 사막에서.
이 녀석들도 K간식 맛을 아는구나!
솔직히 새우깡은 바닷가에서 비둘기나 갈매기한테 던져본 적은 있어도, 사막에서 당나귀한테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단체로 길막까지 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얘네가 우릴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거다.
한 마리가 도로 한가운데 턱 하니 자리를 잡더니, 옆에서 다른 녀석들도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마치 사막판 '조폭 당나귀파'라도 된 듯, 도로를 가로막고 우릴 빤히 쳐다본다.
"야, 얘네 지금 길막 시위하는 거 아냐?"
딸은 영상 찍으며 킥킥대며 말했고, 남편은 창문을 더 내리며 새우깡 한 조각을 던졌다.
"얘들아, 협상하자. 새우깡 한 봉, 길 비켜주면 어때?"
나는 웃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근데 솔직히 살짝 무섭기도 했다.
얘네, 진짜 우리 못 가게 하는 거 아냐?
차 안으로 얼굴 들이밀면 어쩌지?
혹시 차를 툭툭 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웃으면서도 속으론 괜히 식은땀이 났다.
딸은 그걸 알기나 하는지, 영상 찍으며 또 우아우와, 어머 어머를 외치고 있었다.
거의 방방 뛰다시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당나귀 무리와 벌인 일대 협상 전 끝에, 결국 우리가 먹으려고 가져온 새우깡 한 봉지를 통째로 털리고서야 도로를 다시 차지할 수 있었다.
차 안에 남은 건 새우깡 부스러기 몇 개와, 당나귀 눈빛에 굴복당한 우리 셋.
그날, 우리 여행은 딱 거기서 멈춰진 시간을 하나 가졌다.
사막, 그리고 길을 막은 당나귀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자유롭고, 누구보다 어이없게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폭 당나귀파와 새우깡으로 협상 전을 치른 뒤, 다시 데스밸리를 향해 달렸다.
가끔 생각난다.
'녀석들 잘 살고 있겠지.'
"생생한 현장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유튜브 링크를 따라 확인해 보세요(우와 우와 시끄럼 주의!)"
https://youtu.be/rcOY2G9C7Ac?si=thtDa2o-xh2TKog1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