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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신 Oct 02. 2024

2. 욕심과 탐욕

나는 욕심이 참 많아

'과욕은 금물이야' 동화책은 늘 그리 말했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과한 욕심은 파멸을 부른단다. 과거의 선생님이 상냥히 속삭인다. 그건 성경의 한 구절과도 같았다. 모두가 그 말을 신봉했다.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라도 되는 듯이. 그들은 탐욕의 말로를, 그 '죄악'의 삯을 떠들어댔다. 어떻게 보자면 당연하다. 그건 성언이자 일종의 금기였으니까. 


그러나 아기는 무지하다.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에 갓 눈을 뜬 아이들은 참 순진하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다. 그렇기에 더욱 잔인하고 참혹하다. 방긋 웃는 얼굴로 개미를 태워 죽이고, 의도 없는 말로 사람을 찌르고 다닌다. 퍽이나 순백한 폭력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죄를 모른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학습되지 않은 개념에 아이들은 그저 반론할 뿐이다. 왜요? 어째서 그러면 안돼요?


나는 선천적으로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빼앗기는 것은 참지 못하는 주제에 빼앗는 것은 좋아하던. 어린 나는 늘 더 높은 것을 원했다. 지금보다 더. 더욱 위의 것. 지금에 안주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게임판을 엎어 버리곤 하던 애. 내 것을 공유하기 싫어하던 어린이. 동경보다는 질투를 하던 아이. 어린 나는 그랬다.


지기 싫었고, 관계의 우위에 서길 바랐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상과 현실은 확실히 달랐다. 집이라는 작고 작은 세상에서 조금 더 넓은 세계에 발을 딛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런 굉장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고. 


과거의 나는 나를 따라오던 달을 보며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으며,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간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나고 우울과 불안이 내 삶을 정복하던 그 시간 속에서도. 그 지독한 찰나에서도! 나는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승부욕과 욕망, 야망, 욕심. 그것들은 분명 내 속에 존재했다. 아주 작고 옅게 자리를 잡고 숨어버린 야욕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작동했다. 나는 노력을 포기했다. 시도와 도전을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버렸다. 승리하지 못할 거라면. 빛나는 메달과 성대한 환호 소리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럴 바에는. 무참한 실패를 맛볼 바에는.


나는 머리를 비웠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늘 꼬리에 꼬리를 물던 불안이 사라지니 한결 편하기만 했다. 편안했다. 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내 고통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신앙심 하나 없는 그저 흉내에 불과한 시늉이기는 했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현실도피를 반복하던 내 앞에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산다면. 삶을 이어갈 거라면... 꿈에서 깰 시간이야. 신이 내게 신탁을 내렸다. 달콤했던 꿈의 종언이 내게 고해졌다. 내 세계는. 내 세계였을 그 허상은 그렇게 종말을 맞이했다. 파멸의 시대이자 재기의 시간이었다.


욕심이, 나의 갈망과 욕구가 죄라면 나는 분명 죄인일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말했다. 너는 욕심이 너무 많아. 맞는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에도 욕심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내 욕망이 부끄럽지 않다. 나는 나의 야욕에 충실하며 그건 내 삶의 이정표 또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물론 멋모르던 시절에 부렸던 야욕은 실제로 내게 많은 낭패를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그 실패들은 쌓이고 쌓여서 내 눈이 되어주었다. 나는 이제 건실한 열망과 내게 건강하지 않은 갈증을 판별할 수 있다. 몇몇의 사람들은 내 욕심이 과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바꿀 생각이 없다. 그 누구도 나를 고치려 들 수 없다. 나의 탐욕도, 욕심이 많은 나도 전부 '나'다. 나는 나를 가꾸고 단단하게 조형할 것이지 내가 아닌 타인이 될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나는 욕심이 많다. 인정한다. 나의 야망은 생각보다 크고 질척하다. 그렇지만 욕망이, 소망이 없는 삶을 '삶'이라고 칭할 수 있나? 욕심은 생각보다 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인생을 더 근사하게 만든다. 실제로 내 우울이 주기적으로 파도처럼 들이닥치던 시기에도,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그 파도에 휩쓸려 바다 아래에 가라앉은 후에도. 나는 내 인생을 구성하던 그것들을. 내가 갈망하며 희망했던 것들을 찾아 바다를 누볐다. 그것들이. 오직 그것들만이 내 생을 유지시켰으니까.


그렇게 하나하나 건져낸 나의 조각들이 온전치 못해도 나는 그것들을 보관함에 간직했다. 그리고는 간혹 그 함을 들여다봤다. 함에 보관되었던 어떤 것은 추억의 흔적이 되었고, 또 어떤 것은 다시 사랑으로 이어졌다. 그 파편들이 나를 사랑으로 이끌었다. 그래. 종종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운명처럼 나는 그것들을 귀애했고 지금도 경애한다.


욕망하는 삶.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것을 탐내겠지. 나는 계속 탐욕을 부릴 것이고, 그것을 이룰 것이며, 나의 과욕을 미래로 만들 것이다. 


먼 훗날의 내가 예언자가 되어있기를 지금의 내가 이렇게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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