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장로 ― 서행시초 1」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삼리 밖 강쟁변엔 자갯돌에서

비멀이한 옷을 부숭부숭 말려 입고 오는 길인데

산모롱고지 하나 도는 동안에 옷은 또 함북 젖었다


한 이십리 가면 거리라든데

한겻 남아 걸어도 거리는 뵈이지 않는다

나는 어니 외진 산길에서 만난 새악시가 곱기도 하든 것과

어니메 강물 속에 들여다뵈이든 쏘가리가 한자나 되게 크든 것을 생각하며

산비에 젖었다는 말렀다 하며 오는 길이다


이젠 배도 출출히 고팠는데

어서 그 옹기장사가 온다는 거리로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몬저 『주류판매업』이라고 써붙인 집으로 들어가자

그 뜨수한 구들에서

따끈한 삼십오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기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은 구수한 술국을 트근히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몇 사발이고 먹자




2025.9.4. 기나긴 풍랑조차 바삐 흐르게 하는 희망의 구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함남도안」 - 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