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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나 이백 같이」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녯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연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물고기 한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녯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물고기 한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늬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녯날로부터 대대로 이 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은 그 어늬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었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녯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 소리 삘뺄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녯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모려나 이것은 녯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2025.9.24. 호젓한 심정을 그 어늬 기댈 곳 없이 지켜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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