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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날은 밝고 바람은 따사한 어늬 아츰날 마을에는 집집이 개들 짖고 행길에는 한물컨이 아이들이 달리고 이리하야 조용하든 마을은 갑자기 흥성거리었다.

이 아츰 마을 어구의 다 낡은 대장간에 그 마당귀 까치 짖는 마른 들메나무 아래 어떤 길손이 하나 있었다. 길손은 긴 귀와 꺼먼 눈과 짧은 네 다리를 하고 있어서 조릅하니 신을 신기우고 있었다.

조용하니 그 발에 모양이 자못 손바닥과 같은 검푸른 쇠자박을 대의고 있었다.

그는 어늬 고장으로부터 오는 마음이 하도 조용한 손이든가, 싸리단을 나려놓고 갈기에 즉닙새를 날리는 그는 어늬 산골로부터 오는 손이든가. 그는 어늬 먼 산골 가난하나 평안한 집훤하니 먼동이 터오는 으스스하니 추운 외양간에서 조짚에 푸른콩을 삶어먹고 오는 길이든가 그는 안개 어린 멀고 가까운 산과 내에 동네방네 뻑국이 소리 닭의 소리를 느껴웁게 들으며 오는 길이든가.

마른 나무에 사지를 동여 매이고 그 발바닥에 아픈 못을 들여 백끼우면서도 천연하야 움직이지 않고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어른들이 비웃음과 욕사설을 퍼부어도 점잔하야 어지러히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가엽시 여기며 모든 것을 다 받어들이며 모든 것을 허물하거나 탓하지 않으며 다만 홀로 널따란 비인 벌판에 있듯이 쓸쓸하나 그러나 그 마음이 무엇에 넉넉하니 차 있는 이 손은 이 아츰 싸리단을 팔어 양식을 사려고 먼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날은 맑고 바람은 따사한 이 아츰날 길손은 또 새로히 욕된 신을 신고 다시 싸리단을 짊어지고 예대로 조용히 마을을 나서서 다리를 건너서 벌에서는 종달새도 일쿠고 늪에서는 오리떼도 날리며 홀로 제 꿈과 팔자를 즐기는 듯이 또 설어하는 듯이 그는 따박따박 아즈랑이 낀 먼 행길에 작어저 갔다.




2025.9.25. 그 어떤 험준한 산맥보다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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