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처럼, 여행은 인생처럼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추방과 멀미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p.18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작가 본인이 중국 푸둥공항에서 추방당했던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한다. '여행'을 다루고 있는 책의 첫머리부터 '추방' 당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니, 역설적인 느낌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저자가 '여행'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작가는 대학시절, 자신이 추방당했던 중국에 여행을 갔던 시절을 회상한다. 당시 학생회 활동을 했던 작가는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여행길에 올랐지만, 정작 도착해서 확인한 중국의 현실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개발독재국가"였는데다가, "젊은 엘리트들은 미국을 선망하고, 인민들은 믿을 수 없이 초라하고 남루"한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p.22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p.24


이렇듯 여행은 원래 계획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여행길이 가진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있는 '추구의 플롯'을 인용하며 이러한 심리를 설명한다.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드러내놓고 추구하고 있는 외면적 목표가 있지만,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내면적 목표가 있다. 여행이나 모험을 떠난 주인공은 외면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변수들을 만나며 외면적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결국 내면적 목표를 완성해 냄으로써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p.35


추구의 플롯의 주인공처럼, 여행길에 오른 우리들도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에서 원하던 것들을 이뤄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또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시절 중국 여행에서 "정신적 멀미의 괴로움"이 남아있던 작가가 푸둥공항에서 추방당해 고국으로 돌아옴으로써 오히려 '안온함'을 느끼게 되어, 미뤄두었던 소설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p.64


일상에서 탈출하는 해방감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묘미 중 하나이다. 저자는 여행의 시작점에서 자신을 반겨주는 호텔 직원의 서비스와 청결하게 정돈된 방을 보며 안정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원인으로 학창시절 자주 이사를 다녔던 경험과 연관짓고 있는데, 이 경험이 무의식속에 쌓여 지금의 행동 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용어로서 노아 크루먼이 그의 저서에서 썼던 '프로그램'을 인용하고 있다. 프로그램이란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저자의 경우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이 그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안정감뿐 아니라 일상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도 있다. 혹자는 여행을 두고 현실에서 잠시 떠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무의미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해결하기가 어렵거나 막연한 고민이나 문제가 있을 때는, 그곳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것은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생각을 전환을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 『삼십육계』의 마지막 부분은 「패전계」로 적의 힘이 강하고 나의 힘은 약할 때의 방책이 담겨 있다. 서른여섯 개 계책 중에 서른여섯 번째, 즉 마지막 계책인 '주위상(走為上)'으로, 불리할 때는 달아나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p.67




오직 현재


현재에 있는 내가 '경험'을 하는 존재라면, 과거와 미래에 있는 나는 '생각'을 통해서 존재할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장에서 생각과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술가나 작가, 혹은 철학자와 같이 창작활동을 하거나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거주지의 선택이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로움은 내면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곳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신체적으로 편안하지만 다양한 잡념이 생기기 쉽다. 과거를 회상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걱정하는 '생각'에 휩싸여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일상에서 떠나 신선하고 생생한 '경험'을 통해 현재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언어나 이미지를 통해 생각으로 다시 정리된다. 우리가 끊임없이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이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p.81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p.82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p.87


직접 외국에 나가야만 그곳의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나 VR, AR 기술이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여행을 통해 외국이나 다른 지역의 경관을 구경하는 것 뿐만이 아닌, 이동하는 것 자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과 유사한 다른 동물들도 이렇게 많은 장소를 이동하며 살아갈까? 연구에 따르면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치 등 유인원의 경우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많은 움직임을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에 쉽게 걸리지 않는 반면, 인간의 경우 이들과 똑같은 생활패턴을 가진가면 앞서 말한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언뜻 보면 우리 인간이 불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인류의 사냥 방식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와 하버드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이 특유의 이동 능력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사냥하고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기대는 우리 몸속에 오랜 시간동안 품어왔던 유전과 본능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p.89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p.92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카프카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현대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것, 아니 그 목적지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보았다.
p.108


이번 장에서 작가는 본인이 출연했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했던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이 여행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생각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카프카적 상황'에, 다른 하나는 '근대성'에 기초한 생각이다. 카프카적 상황이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성』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기반한 개념으로서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상황을 겪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반대로 근대성이란 아래 인용구와 같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를 둔 것이다. 여행자는 근대성에 기초하여 자신의 여행길을 잘 통제해보고자 노력할 수도 있고, 본인이 카프카적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행에서 벌어지는 여러 변수들을 즐길 수도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더 잘 통제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태도. 이것은 르네상스 이후에 인류가 선택해온 길이다. 합리성을 믿고, 과학적 진보를 통해 세계와 인간을 변화시키고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근대성이다.
p.108


이번 장에서 다루고 있는 다른 개념은 바로 '탈(脫)여행'이다. 이는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에 언급된 것으로, 책의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믿을 만한 정보원을 시켜 여행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듣고나서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좋은 여행을 왜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일까?'하고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겪은 여행만이 여행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직접 듣거나 책을 통해 읽고, 때로는 TV를 통해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다녀왔던 여행조차도 함께했던 사람의 후기를 듣고나면 완전히 다른 여행을 경험할 수도 있다. 아래 인용구와 같이 여행지를 직접 구경하는 것 외에도 그 시간을 언어로 옮기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여행이 또 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떄문이다. '탈여행'이 직접적인 여행 못지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p.117




그림자를 판 사나이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라.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면 굳이 그림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p.129


작가는 이번 장에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의 인용구와 같이 정리했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림자'를 판매한 대가로 주변 사람들에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주인공은 '마법의 장화'를 사서 세계를 떠돌며 살아가게 된다. 어딘가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나쁜 결말이겠지만,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며 방랑자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입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결말이 좋으냐, 나쁘냐와는 별개로 우리들은 어떠한 '그림자'를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평상시에는 잘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 책에서 나온 '주코티공원'의 예시를 보고나서 내가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내가 그 사회나 집단, 혹은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지며 의무를 다하는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지역에 잠깐 왔다가는 여행자가 아닌, 구성원으로서 말이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거기에서 받아들여질까?
p.132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p.139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다녀가는 '승객'이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는 아폴로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하여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고 인류는 '지구의 승객(riders)'과 같다고 표현했다. 작가는 이 표현을 해석하며 우리 인간들은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하여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 덕분에 생존에 있어 기초적인 것들을 익히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여행을 떠난 이들은 지구별에 갓 도착한 아이와 같이 취약한 면이 많다. 사람들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고, 문화는 낯설다. 그래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두렵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곤경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먼저 도착한 이들"에 의해 도움을 받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환대를 받은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을 마주했을 때 호의를 베풀 수 있고, 이러한 선순환이 거듭되며 세상을 더욱 이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순환은 비단 여행에 국한되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환대와 박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우리가 어떠한 순환 구조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우리 사회가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물음이며,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p.148




노바디의 여행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p.155


여행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고향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p.159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까? 이번 장에서는 작가가 여행지에서 겪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우리들은 대부분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이웃이고, 친구 또는 연인이나 직장 동료 등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행길에 오른 우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저 여행자일 뿐이다. 그렇게 우린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가 되어간다. 이것은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와 주어진 역할에 의해 압박감을 견뎌가며 살아가곤 한다. 여행을 떠난 우리는 그 압력에서 벗어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여행지에서 마저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받고 싶어할 수도 있다. 키클롭스의 동굴에 갇혀 있었던 오디세우스나, 반대로 오디세우스의 집에 찾아온 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결말이 좋지 않았듯이, 여행지에서의 문화나 규칙을 어기거나 현지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방식으로 감행하는 영향력 과시는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은 여행에 앞서 명심해야 할 점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반드시 섬바디(somebody)가 될 필요는 없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p.168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p.183




여행으로 돌아가다


마사이족으로 산다는 것은 삶이 항구적인 여행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똑똑함이란 소떼를 먹일 풀이 어디에 무성한지를 알아내는 능력이다.
p.190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p.193


한 장소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현지인이고 누군가는 여행자이다. 장소가 여행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코엑스 앞에 있는 '강남스타일'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영국인을 무심히 바라보며 지나가는 서울 시민들은 이곳에서 여행이 아닌 일상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삶 자체가 여행과 같이 다양한 장소를 이동하며 살 수도 있다. 책에서 소개된 마사이족은 그들이 키우는 '소'가 삶의 중심이기 때문에 소가 먹을 풀이 다 떨어진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하 작가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임지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학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선 어린 시절, 새로운 장소와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작가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이다. 일상이 여행같이 불안정하고, 여행이 일상같이 익숙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들을 마주하고 체험하는 경험이 작가에게는 두렵지 않은 과정이 되었을 것이고, 이는 여행자로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밑바탕이 되어줬을 것이다. 여행은 낯선 장소를 새롭게 알아가는 동시에,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도록 해준다. 우리가 일상을 새삼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곧 우리들이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행기는 모험 소설과는 다른 측면에서 나를 안심시켰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이 불안과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지금 여기'에 없는 놀라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은 끝이 없다는 것.
p.198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p.206




작가의 말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212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구했을 것이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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