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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Jan 28. 2017

속도가 다른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내게 당신이 알려준 느림의 의미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 말은 아마 나보다 당신이 훨씬 더 실감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난 지는 이제 꼬박 5년, 서로 너무나 다르기에 그 다름을 동력으로 재미나게 살아보자 다짐하고 결혼한 후 또 한 해를 함께 보내었네요. 한국에서의 쫓기는 삶에 지쳐하던 일을 그만두고 당신에게는 너무도 낯선 땅, 스웨덴으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도 묵묵히 내 결정에 따라주었던 당신.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 먼 곳, 유럽의 최북단까지 내 손을 잡고 함께 와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 한 번 건네지 못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사람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전에는 나조차 몰랐던 것 같아요. 한국의 바쁜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 단 한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사는 나. 이 곳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몸은 아직도 한국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어요.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한국의 속도도 아닌 나만의 속도 인지도 모르겠네요. 한국에서도, 이 곳 스웨덴에서도 당신이 뭔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움직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마치 당신의 품 속에는 째깍째깍 소리마저 부드러운 침착한 시계가 있고 내게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시한폭탄 같은 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달라진 것이라곤 여기에선 나를 쫓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 그런데도 나 스스로 내가 정한 시간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니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이것이 나의 문제라는 걸 몰랐을 때, 사실 최근까지도, 나는 당신에게 내 시계에 맞춰 나와 같은 삶을 살아주기를 강요하고 있었어요. 잠깐 쉬고 있는 당신을 보면 자꾸 채근하게 되고, 하나를 할 시간에 왜 세 가지를 동시에 하지 못하느냐고 타박하기도 했죠. 그러고 보면 나란 사람은 참 우스워요. 내게 더 하라고, 더 빨리하라고 등 떠 미는 사람들을 피해 이곳까지 왔는데 이제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 되려 내가 당신에게 그 사람들과 같은 역할을 하려 하다니. 어쩌면 나란 사람, 우스운 것이 아니라 무섭다고 해도 할 말이 없네요.


함께 산다는 이유로, 당신이 나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내 시계에 맞추어 살 이유는 없지요. 애초에 새로운 시간을 살기 위해 온 이 곳에서조차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뒤쳐지면 안 된다, 남보다 더 빠르게, 남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의 속도에 맞춰 살았던 나. 그런 강박을 버리는 것은 단순히 그 공간을 떠나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오히려 당신이란 존재가 나에게 새로운 시계가 되어주고 새로운 시간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조급해하는 내 손을 잡아주며 아직 해도 지지 않았다고 말해주거나 두 손에 가득 든 것들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내게 과감히 버리는 방법을 알려준 당신. 이 나이가 되도록 느긋해지는 방법도, 버리는 방법도 몰랐으니 나는 결혼을 하고서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나 봅니다.


부부란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막 그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나 때문에 많이 더뎌졌지만 이것만은 급하게 가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 때에는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도, 울려대는 휴대폰의 메세지음도, 보고 있던 TV 소리도, 그 무엇도 없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느린 시간을 살아보기로.

함께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 없는 짧은 여행을 할 때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 없이 섞여 자연을 즐기고 그저 별 의미 없는 짧은 대화를 끈기 있게 주고받기로.



경주마 같던 내가 하루 아침에 쉽게 변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당신의 시간이, 당신의 속도가 우리의 그것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을 먹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많이 발전한 것 아닌가요?

앞으로도 아주 가끔은 당신의 등을 떠밀고 당신의 손에 뭔가를 많이 들려주려 할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그때마다 얘기해주세요. 우리가 떠나온 이유와 함께 느꼈던 느린 시간의 행복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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