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고 엄청난 일'이란 내가 정의하기 나름이 아닐까?
World's Largest Snowball Fight: Attempt to Guinness World Record!
세계에서 가장 큰 눈싸움: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다!
페이스북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눈싸움에 도전'하는 이벤트에 초대받았다. 그것도 스웨덴 룬드, 나의 작은 도시에서. 이 작은 도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이라는 수식어도, '기네스 기록'이라는 말도 딱히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하교 시간에 딱 맞게 집에 가려면 지날 수밖에 없는 대성당 주변에서 열리는 눈싸움에 안 가볼 이유는 또 딱히 없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을 불러낸 후 혼자 성당 주변을 어슬렁대 보았다.
처음엔 역시 기대 이하라고 생각했다. 눈싸움에 참가한 사람들은 40명 남짓. 하지만 그들의 굉음과 흥분은 엄청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눈싸움을 지켜보며 "이거 정말 큰 눈싸움이네, 하하"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눈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의 흥분과 즐거움으로 보자면 정말 기네스감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 아이부터 청소년, 대학생들과 중년의 아저씨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별다른 장치도 없이 쌓인 눈 하나로 꽤나 흥분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아무도 짜주지 않았지만 두 개의 편도 생겼고 나름의 룰도 생겼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참가자가 되기도 하고 지쳐서 눈 위에 엎어진 채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눈싸움을 구경한다. 눈싸움에 참가한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하나 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체감 영하 9도의 눈밭에서 대낮에 벌어지는 낯선 이들과의 눈싸움이라니.
스웨덴, 그중에도 작은 대학도시에 살며 하루하루 채워지는 일상이란 때로는 소소하고 지루하게 보인다. 하지만 소소하고 지루하다는 말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의 생각, 감상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 생각은 쉽게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작은 도시에서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벌어진다. 사실 '크고 작은'이라기엔 내 기준에서 거의 '작은' 이벤트들. 하지만 정작 이벤트에 참가해보면 그 규모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시내 광장에서 예고 없이 열린 작은 악단의 연주에 열광하는 사람들, 작은 동네 축제에서 다 함께 딴 사과로 주스를 만들며 느끼는 뿌듯함.
이 곳에 살며 어떤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그 일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정의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게 뭐야, 시시하네,라고 생각하는 일도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경험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곳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발견한 것은 내가 참석한 행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얼마나 크고 멋진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경험해보니 무엇이 좋았는지, 내가 어떤 걸 느꼈는지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들의 "어땠어?"가 "너의 감상은 어땠니?"를 묻는 것이라면 나의 "어땠어?"는 아마도 "그 행사는 얼마나 대단했니?"를 묻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가 봐도 크고 멋진 행사라면 그 속에 있는 나도 당연히 멋진 경험을 한 것이고 그 감상은 물은 필요도 없이 좋은 것, 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있었는지도.
덴마크 티볼리 놀이동산에서 작은 불꽃축제를 보았을 때도 느꼈다. 멀리서 불꽃축제를 보면서 '에게... 저게 뭐야. 에버랜드 가면 저것보다 훨씬 엄청난 이벤트도 많은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그 작은 불꽃에 열광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사람들의 행복한 에너지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너무 큰 자극을 경험하며 살다 보니 작은 즐거움들에 대해 무뎌진 걸까? 꼭 무언가 크고 엄청나야만 의미가 있고 볼 만한, 또는 경험할 만한 것이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있던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큰 눈싸움은 이 곳 룬드에서 매일 일어나는 작은 이벤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이 눈싸움에 참여하며 놀라운 경험을 했고, 새로운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 눈싸움이 세계에서 가장 큰 눈싸움은 아니었지만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행복은 기네스에 올라있는 가장 큰 눈싸움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