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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Mar 09. 2017

스웨덴의 화장실이 특별한 이유

매일, 또 자주 가는 화장실. 그런데! 스웨덴의 화장실은 뭔가 다르다?



부인과 함께 스웨덴에 오고는 너무 당연해서 별 생각없이 지나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일 때가 많다. 내게는 당연한 행동이나 말이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되기도 하고 그들에게 당연한 것에 내가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당연한' 것이란 없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은 뭐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그것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은 급할 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화장실'의 재발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화장실이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크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스웨덴의 화장실은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사실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다.


'스웨덴의 화장실은 뭔가 조금 다르다'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그동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다른 쪽에서 살펴보면 조금은 달라 보일 수도 있구나.'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글 내용 중에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구독자분들께서 흥미로운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아래 내용에서 이야기하는 '화장실'은 공중 화장실의 개념임을 미리 밝힌다.





나에게 화장실이란

'화장실'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공중 화장실이다. 긴 여행을 하다가 잠깐의 휴식과 나의 가장 큰 절박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에 그렇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칸이 많은 대규모의 화장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화장실은 항상 입구에서부터 긴 줄이 늘어져 있다. 그에 반해 남자 화장실은 비교적 한산하고 순환이 빠르다. (그 장면을 목격하면서 종종 '남자로 태어난 것의 장점은 이것이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하면 누구나 그러하듯 '차에서 내려서 화장실을 향한다 -> 남녀로 나뉜 화장실에 들어간다 -> 일을 보고 나온다.'의 아주 '당연하다' 여기는 단계를 거쳤다.

휴게소의 화장실을 포함한 한국의 모든 남자 화장실에는 불문율이 있는데 '소변을 볼 때, 시선은 늘 앞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소변기에 붙어 서 있는 순간,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굉장히 어색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소변기를 향해 시선을 두면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와 함께 화장실에 가더라도 소변을 볼 때는 앞의 벽만 보곤 했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머리 속에 각인된 화장실의 이미지는 화장실 입구에 남녀로 나뉜 간판,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면 한쪽엔 줄지어 위치한 소변기, 그리고 반대편엔 볼 일을 위한 대변 칸 정도의 구성이다.



그런데. 스웨덴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없다.

이곳에 와서 처음 화장실에 간 건 처음 도착한 공항에서였다. 그 기억이 또렷한 이유는 내가 그동안 갔던 화장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었던 화장실 구조. 여기... 저 들어가도 되나요?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화장실 표시를 보고 찾아갔더니 죄다 이렇게 생겨서 처음엔 난감했다. '여기가 여자 화장실인지, 남자 화장실인지도 모르겠'고 '여자 화장실이라 내가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화장실 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를 한참 망설였다. 그리고 '도대체 남자 화장실은 어디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남자 화장실을 찾기 위해 공항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 해프닝 이후 스웨덴에 살며 말뫼, 룬드, 달비, 스톡홀름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이 곳 저 곳 다양한 화장실 역시 많이 갔다. 그런데 그때마다 화장실은 항상 저런 모습이었다. 그때는 단순히 '남녀 화장실을 따로 만들 공간이 없어서 합쳐뒀나 보다.' '청소하기 힘드니까 동시에 하려고 안 나눴나 보다. 역시 실용적이군!' 과 같이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교를 가도, 큰 쇼핑몰에 가도, 공항을 가도, 카페를 가도, 대형 음식점을 가도 모든 화장실은 위의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고 점차 나는 '그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참고로 저렇게 방처럼 생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부 구조는 주로 이렇게 생겼다.

소변기를 볼 수 없는 스웨덴 화장실. 사실 이런 구조라면 소변기가 딱히 필요하진 않겠다.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좌변기와 세면대 그리고 화장지가 있다. 화장실은 대개 한 명씩 들어가고 (간혹 어린아이와 부모가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남녀 성별에 상관없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자기 순서가 되면 들어간다. 여자 분들은 이런 독립형 구조에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처음에 이 구조가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리고 공중 화장실에 소변기가 없다는 사실 역시 어색했다. 아무리 큰 규모의 쇼핑몰을 가도 이 독립형 화장실의 개수만 늘어날 뿐, 이런 기본적인 구조는 같았다.



화장실에 담겨있는 그들의 가치

스웨덴의 화장실은 왜 다를까?에 대해 궁금해하던 차에 우연히 이와 관련된 TED 영상을 보았다.



"내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가장 먼저 1인용 칸막이가 있는 중성 화장실을 공공장소에 만들겠다"고 말하는 이 강연자, 이반 코요테(Ivan Coyote)는 트렌스젠더이다. 그는 이분법적인 성 구분에 들어맞는 사람들에게만 열려있는 공공 화장실들에 대한 의문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성전환을 한 사람이다.
나는 남자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불안함과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와 같이 성적 구분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성 구별이 없는
화장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상에서 '왜 스웨덴에는 남녀 화장실이 나뉘어있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가 조금 풀렸다. 또한 이러한 구조의 화장실을 Gender neutral Restroom(성 중립 화장실) 혹은 Unisex Restroom(남녀 공통 화장실)이라고 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공항에서 내가 혼란을 겪었던 '남ㅣ여 화장실 그림' 역시 성 중립 화장실의 기호라고 한다. 한국에 살며 화장실 앞의 저런 그림을 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그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헷갈렸던 것이다.

궁금해서 좀 더 찾아봤더니 전세계적으로 성 중립 화장실이라는 개념과  '남ㅣ여 화장실 그림'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 캐나다, 영국, 유럽 등에서 실제 성 중립 화장실의 개수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인 의미 표현을 위해 아래와 같은 새로운 기호도 사용한다고.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세 번째 그림이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구글



이와 같은 화장실의 구조와 화장실 그림은 단지 '성을 바꿨거나 이분법적 성 정체성에 모호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룬드의 어느 카페 화장실 사진을 첨부한다.

스웨덴 룬드, 어느 카페의 화장실. 하나의 화장실이 모두를 위하는 공간이 된다.



이 화장실 역시 성 중립 화장실이고 화장실 그림 표시 또한 '남ㅣ여'로 되어 있다. 변기 옆에는 노약자나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손잡이가 있다. 사진상에서는 조금 잘렸지만 세면대 오른쪽에는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간이침대와 침대를 덮을 수 있는 1회용 시트커버가 있다. 이 화장실은 장애인만을 위한 화장실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함께 쓸 수 있는 화장실이다. 이런 구조의 화장실은 스웨덴 어디를 가든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화장실이라면 성전환을 한 사람(혹은 성정체성에 모호함을 가진 사람)에게도,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도, 아기와 함께 화장실에 가야 하는 엄마 아빠에게도, 남자 또는 여자 모두에게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곳의 화장실은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 더 나아가 단순한 화장실이 그들이 담고자 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당연히 누려야 한다는 인권과 평등에 대한 지향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화장실 안에 이러한 가치가 들어있다면 스웨덴 사회의 다른 시설들이나 제도에도 역시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담겨있지 않을까?



차별이 줄어드는 사회를 위하여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길 원한다. 하지만 수많은 구성원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욕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때론 갈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인종과 성적 지향, 장애 유무와 국적, 나이 등을 잣대로 힘이 약한 사람들을 차별하기도 하고.


나는 '모두가 언제나 행복한 세상'이란 불가능할지라도 차별을 줄여서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상은 우리 주변에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쳤던 어떤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불편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고 서로 대화할 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변화시킬 때, 한 사회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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