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의 채식 생활,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나는 채식을 하고 있다.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중간중간 공백이 좀 있었지만 스웨덴에 온 후로는 어렵지 않게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스웨덴에 오기 직전 1년 남짓 이어졌던 나의 채식 생활은 위기를 맞이했었고 결국엔 채식을 포기했었다. 사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채식을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채식을 하는 것이 튀는 행동으로 여겨졌고 식사시간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점심시간은 일종의 쉬는 시간인데 왜 다 같이 특정 식당에 가서 특정 메뉴를 먹어야 하는 분위기 때문에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했는지 의아하다.
그 이후 스웨덴에 와서 다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채식을 시작하면서는 왜 한국에서 채식을 하는 것이 힘든가에 대해서도 돌이켜 생각해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 개인적인 채식에 대한 경험과 생각, 그리고 스웨덴에서의 채식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스웨덴에 와서 바로 "이제 다시 채식을 해야겠다!" 생각한 건 아니었다. 알다시피 채식을 한다는 것은 외식을 할 때도,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에도 항상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서 다시 채식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아무래도 환경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수업 시간에 육고기 생산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유제품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환경적인 영향력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세계 토지 사용과 그 변화에 대해 수업을 들었을 때를 예로 들어보면. 농경지 사용의 여러 종류를 보면, 가축들에게 먹이기 위해 작물을 심는 토지들이 있고 사람들이 직접 먹기 위한 작물을 심는 토지들이 있다. 여기서 100이라는 양의 곡물을 우리가 직접 먹으면 100칼로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100이라는 양의 곡물을 소에게 먹이면 우리는 12칼로리만큼의 소고기만 얻을 수 있다. 이 효율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순으로 높아진다. 한마디로 소보다는 돼지를, 돼지보다는 닭을, 닭보다는 채소를 먹는 것이 좀 더 효율적으로 땅을 사용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공부를 매일 하다 보면 환경에 가장 적은 영향을 주는 방법은 채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또한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 외에도 스웨덴에서는 육식의 환경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세미나나 모임 자리가 많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밖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동물 보호를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 경우에는 아무래도 육식의 환경적인 영향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또 스스로 생각하다 보니 채식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채식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같은 학과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채식주의자이다. 그중에는 비건 (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도 상당히 많다. 친구들 대부분이 환경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 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다 보니 저절로 고기를 먹을 기회가 없어진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채식을 했을 때는 나보다 내 주변의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나보다 더 곤란해했던 것 같다. 다들 채식을 하는 나와 함께 밥을 먹으려면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한국에서 고기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식사 메뉴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그때 깨닫기도 했다. 김치찌개를 먹어도 그 안에 고기가 들어있고 칼국수를 먹어도 베이스는 사골육수이었다. 나 때문에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회사 동료들 때문에 괜히 나도 미안해지고 때로는 가지가지한다 구박하는 직장 상사들 때문에 삼겹살집에 따라가서 소주만 드링킹한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모두 채식주의자들뿐이라 오히려 채식을 하는 편이 친구들과 다니기 편할 정도이다. 처음엔 신기했고 지금은 익숙해졌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스웨덴은 채식하기 정말 좋은 나라이다. 사실 전통적인 스웨덴의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항상 나오는 대답이 '소스를 곁들인 구운 고기와 감자', '미트볼과 감자', 혹은 '절인 청어와 감자', 정도이다. 보면 알겠지만 이 음식들은 한국의 전통음식인 비빔밥이나 된장찌개보다 오히려 '고기와 생선'이 위주인 음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여전히 채식하기 정말 좋은 나라다. 스웨덴에는 정말 많은 채식 메뉴들이 있고 어느 식당엘 가든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학교 식당에도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두 개 이상 꼭 있다. 슈퍼마켓을 가면 비건들을 위한 콩고기, 비건 치즈 등 다양한 재료들을 손쉽게 살 수도 있다. 채식 강국 인도에서 온 친구들도 스웨덴은 채식하기 정말 좋은 나라라고 인정할 정도. 이런 환경 속에서는 채식을 하면 불편하다, 채식을 하면 귀찮다, 채식을 하면 먹을 게 없다... 등등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채식이 별 특별한 일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이렇게 스웨덴에서 채식을 하면서는 불편하거나 힘든 점이 전혀 없었다. 가끔은 내가 채식을 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편안하게 채식 생활을 하고 있으니. 오늘 점심은 뭘 먹어야 되지, 무슨 음식에 고기가 안 들어가지... 하는 고민을 할 필요 없이 대부분의 식당에 들어가서 채식 메뉴가 뭐 있죠? 하고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 스웨덴은 채식 인구가 많고 그 기간이 오래되어 이렇게 식당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 거겠지?', '스웨덴에는 팔라펠처럼 병아리콩이나 렌틸콩 등을 주재료로 한 채식주의자들이 먹기 딱 좋은 음식 메뉴들이 많아서 채식주의자들도 편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웨덴 친구들과 스웨덴의 채식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한다. 채식하는 사람을 까다로운 입맛이나 유별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재료의 선호를 개인의 선택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이런 개인들의 선택적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식당마다 채식 메뉴(vegetarian, vegan)가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나 공식적인 디너파티를 참석할 때에도 꼭 혹시 채식주의자는 아닌지, 비건은 아닌지, 또 특별히 알레르기가 있거나 싫어하는 음식이 있지는 않은지를 묻는다. 심지어 학교 수업 차 현장 학습을 갔을 때에도 모든 학생들에게 못 먹는 음식이 없는지, 채식주의자인지 조사한 후 식단을 조정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얼마 전 한 매체의 기사(아래 링크 참조)를 통해 한국 전체 대학들 중 채식 식단이 있는 학생식당은 단 3곳뿐이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한국의 채식 인구는 2%, 채식을 지향하는 '채식 선호 인구'는 약 30%이고 이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60322
스웨덴에서 채식주의자의 비율이 최근 급증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 비율이 40%로 가장 높은 인도의 경우 종교적인 이유(힌두교, 자이나교 등)가 가장 많은데 비해 스웨덴 사람들은 육식의 환경적인 영향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인구의 10 % 가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현재는 더 많아졌을 수도 있겠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의 짧은 기간 동안 채식주의자의 비율이 4%나 증가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채식주의자의 비율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타 북유럽 국가들(덴마크 4%, 노르웨이 2%, 핀란드 3%)에 비해서 굉장히 높은 편이라 이것이 북유럽 전체의 특징이 아닌 스웨덴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채식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빠른 시간 동안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병아리콩이나 렌틸콩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채식 메뉴들이 지금처럼 널리 퍼진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원래부터 스웨덴 음식들 중 이런 재료들을 사용하는 음식들이 많았나 생각할 정도로 채식 메뉴들이 다양하고 보편화되어 있다.
스웨덴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환경과 사회 제도들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스웨덴에 오고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든 내가 항상 듣게 되는 이야기, 또 나 스스로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은 '완벽한' 것이란 없다는 것이다. 항상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 변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스웨덴의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환경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 특히 채식 인구가 40% 육박하는 인도에서 온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마트에서 파는 식품들에 채식 마크를 부착하면 더 좋겠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인도처럼(아래 그림 참고) 채식주의 제품에 대해 마크를 부착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힘들 수 있다고 보지만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큰 시스템의 변화보다도 현재 잘 되어 있는 것을 조금만 변형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인도 친구들처럼 순전히 외국인 채식주의자의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스웨덴이 이민자들이 많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것에 비해 유독 마트에서 파는 제품들에 적힌 성분 표기만은 모두 스웨덴어이다. 때로는 스웨덴어, 덴마크어, 핀란드어 등 북유럽 국가의 언어로 다양하게 쓰여있는 제품 성분 표기를 보면서 영어도 추가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물론 스웨덴어를 배우면 되겠지만(!) 모든 것이 영어로 수월하게 통하는 스웨덴에서 유독 마트에서 파는 다양한 제품들에만 영어가 없는지 의아하긴 하다. 제품 성분 표기만 읽어볼 수 있어도 외국인들이나 이민자들이 채식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식재료, 특히 신선재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 또한 스웨덴 채식에 걸림돌이 된다. 실제로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스페인으로부터의 채소 수입에 문제가 생겨 모든 채소 코너가 며칠간 텅텅 비었었다.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냉동된 재료들이나 가공식품들이다. 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채식 생활을 위해서는 다양하고 신선하고 재료의 공급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 부분은 채식을 떠나서도 사시사철 현지에서 신선한 재료를 얻기 힘든 스웨덴의 지리적 특성상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스웨덴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나는 딱히 채식을 해야 한다, 채식을 하자,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다.(같이 사는 남편 또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어떤 선택에 대해서든 '소수'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다거나 별종으로 여겨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의 직장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본다. 각자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서로의 입맛도 존중하는 식으로.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회식은 항상 고깃집 아니면 삼겹살집이라든지 숯불구이집... 나는 회식을 매-우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데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는 회식은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구성원 모두를 배려하는 회식과 회사 문화를 만들기란 진정 힘든 것일까? 모두를 위한 대안적 회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한국에서도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또 채식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한국 또한 스웨덴처럼 채식하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비빔밥이나 된장찌개 같은 한국 음식들이 채식 메뉴에 더 가깝지 않은가. 모두가 채식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힘겨움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