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속가능 스튜디오 Apr 11. 2017

스웨덴의 겨울과 봄,
한 도시의 두 색과 사람들

활기찬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스웨덴 사람들의 풍경




춥고 어두워 더 길게 느껴지는 스웨덴의 겨울. 스웨덴의 긴 겨울을 지내고 이제, 아마도 봄이 온 듯하다. 한국은 기온이 벌써 20도 가까이 되었다고 하는데 스웨덴에서는 기온이 10도만 되어도 모두 봄맞이에 나선다. 


나는 스웨덴 남부, 작은 대학 도시 룬드에 살고 있다. 스웨덴 남부에 살며 걱정했던 것보다는 춥지 않은 겨울을 보냈다. 하지만 추위보다 큰 문제는 축축함과 어둠. 오후 1시 즈음 해가 지는 일부 북부 지방에 비하면 낫다고는 하지만, 오후 4시면 해가 지는 이 곳의 겨울 또한 모두에게 꽤나 버거운 날들이었을 것이다. 짧은 여름에 비해 너무 긴 겨울, 그 어둡고 축축한 겨울을 지낸 후 오는 봄이란, 스웨덴인들에게 얼마나 반가울지. 한국에서라면 "아직 겨울이야"라고 말할 날씨가 이 곳에서는 봄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봄이란 기온과 자연환경의 변화로 정의되는 것이 아닌 봄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서 정의되는 것은 아닐지.

 


작은 도시에서 계절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

남들이 보기에 작은 도시의 생활은 모든 것이 단조롭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단조로움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 매일 같이 같은 풍경을 지나치고 작은 일들을 쉽게 해내는 일상은 나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그러므로 이 곳 스웨덴 작은 도시에서 내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변화라 함은 바로 이런 계절의 변화이다. 한국에서 분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 때에 내가 체감했던 계절의 변화는 ‘벚꽃이 핀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변한다’, ‘단풍이 든다’, ‘눈이 내린다’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집-회사-회사-회사-집, 이런 삶을 살면서 꽃놀이는 회사 주변에서 밤에나 잠깐, 눈은 출근길 좋은 지각 이유가 될 뿐이었다. 이 작은 도시의 학생으로 살면서부터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길을 천천히 지나다닌다. 인적이 드문 등굣길의 풍경은 눈에 익숙해져 편안하다. 새로운 계절이 오고, 이 익숙한 공간들과 풍경들은 문득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변화를 관찰한다. 작은 변화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이제야 계절이 바뀌었고 동시에 내가 바뀌었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작은 도시의 한적한 길에 선 나, 계절의 변화를 내 눈으로 천천히 지켜볼 수 있게 된 나. 

스웨덴 룬드에서의 첫 번째 겨울, 또 첫 번째 봄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매일 똑같이 들어서는 학과 건물의 입구. 입구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매일 같아 보이지만 사실 매일 다르다. 눈이 오는 날 수업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서며 좀 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 오는 날 여유롭게 주변을 거닐고 눈을 밟아보고 이렇게 많은 사진을 남겨본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눈이 온다는 것이 순수하게 기뻤던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봄이 오니 괜히 또 겨울이 그리운 것은 눈 오는 날의 그 순수한 즐거움이 그립기 때문인가 싶다.



같은 공간의 색이 계절이 따라 이렇게도 달라지는 것이 참 신기하다. 계획한 것도 아닌데 등굣길에 지나치는 모든 공간들의 사진을 이렇게 찍어놓았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지난 길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 계절의 작은 변화들을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 내게 그럴 여유가 있다는 게 참 좋다.









스웨덴 사람들이 겨울을 견디는 방법과 봄을 맞이하는 마음

내가 항상 ‘스웨덴 사람들 너무 귀여워’라고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봄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다. ‘오늘은 봄내음이 좀 느껴지려나?’ 생각하며 집을 나설 때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것이 선글라스를 쓰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모습이 항상 귀엽게 느껴진다. 그들의 봄을 맞는 설렘과 기쁨이 온전히 전해져 보는 나까지 행복해진다. 그들의 겨울이 마냥 우울하지 않은 것은 이런 봄날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만큼의 환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다 함께 몰려나가 햇볕 아래에 주저앉는다. 우리는 밥을 먹다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요가를 하거나 축구를 하기도 한다. 예전의 나는 분명 쨍한 햇볕 아래 그늘을 찾아다니기 바빴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수많은 해바라기 중에 하나가 되어 있다. 나도 그들의 귀여운 풍경 속에 속해있다는 것이 참 좋다. 





그렇다고 스웨덴의 겨울이 ‘봄을 향한 기다림’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본 스웨덴의 겨울은 어느 곳의 겨울보다 활기차다. 그들은 몸을 움츠리거나 실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긴-겨울을 사랑하고 그 겨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건 바로 주저 없이 밖으로 나가는 것. 겨울이라고 그들이 하지 않는 것은 없다. 스웨덴 친구들은 “긴 겨울이 마냥 좋지는 않지만 춥고 어두운 겨울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1년의 많은 부분을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스웨덴 사람들의 겨울나기는 정말 활동적이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학교의 겨울방학은 길어야 2주, 보통은 1주일이다. 방학 시간 이외에는 여느 때처럼 학교를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 야외 활동이 많은 스웨덴의 학교에서는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스웨덴에 왔을 때 가장 처음 들었던 말이자 동시에 가장 자주 듣는 말은,


There's no such thing as bad weather, only bad clothes 
-나쁜 날씨란 없다. 나쁜 옷차림만 있을 뿐.



이 말을 듣고 비웃는 외국 친구들도 많았다. 스웨덴의 나쁜 날씨를 정당화하려는 말 아니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듣고 사실 조금은 감동받았던 것 같다. 날씨를 탓하기보다 옷을 똑바로 입으라니. 이보다 더 긍정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말이 또 있을까. 또한 이 말이 그냥 ‘말만’이 아닌 실제로 스웨덴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들이 겨울을 견디는, 아니 겨울을 즐기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감격했다. 커다란 배낭에 목도리, 장갑, 선글라스를 함께 챙겨 다니는 스웨덴 친구를 보며, 어떤 날씨에도 꿋꿋이 걷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이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학생들은 눈싸움을, 아이들은 동네 공원에서 눈썰매를 탄다. 우리 남편마저 눈밭에서 타는 자전거를 즐기게 되었다. 장갑과 모자만 있으면 눈밭에 굴러도 별 걱정이 없다. 눈 내리는 날이면 되려 집을 나서 밖을 돌아다닌다. 평소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 또 더 재미있는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스웨덴, 요란스러운 봄의 색

다시 봄, 이제 봄이다. 스웨덴의 봄은 요란스럽게 온다. 그 요란스러움은 자연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 마음의 변화에서 오는 듯하다. 사람들은 갖가지 화려한 색깔을 껴안고 광장으로 나온다. 봄의 색은 광장을 활기 돋게 만든다. 스웨덴의 꽃은 들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다. 이 많은 색색의 꽃들이 어디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이스터를 맞이한 색색의 깃털 장식과 함께 작은 꽃 화분을 들고 집을 향하는 할머니의 얼굴에 또 하나의 봄꽃이 피어났다. 봄은 매년 오는 것이지만 올 때마다 반갑듯이, 특별할 것 없이 흔하게 피어난 꽃들 또한 볼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광장 한구석 벤치에 가만히 앉아 요란스러운 스웨덴의 봄, 그리고 그 봄의 색에 질리지 않는 것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환희와 에너지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