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집'이라 하면, 하얀 벽과 이케아만 떠오르시나요?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있는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 '북유럽 인테리어'의 본고장 스웨덴에 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디자인 강국 스웨덴에 우리의 첫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는데, 사실 우리의 스웨덴 신혼집이란 정말로 특별할 것이 없다. 일단 신혼집이라고 해보았자 학생 아파트이고 심지어 방도 따로 없는 원룸 스튜디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 집을 따듯하게 꾸며보고자 노력했고 아주 어렵게 어느 정도 개인의 공간을 나누는데도 성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집이 완전한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기는 조금 어렵다.
나는 10년간의 자취생활을 통해 이런 '임시적인 집'에 쭉 살아왔었다. 이렇게 일종의 '임시적인 집'에 살 때 꿈꾸게 되는 것은 항상 '미래의 집'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의 집을 내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꾸며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지금보다 더 완벽히 나의 가치가 반영된 미래의 집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꿈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 집을 얻는다고 이 꿈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며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어 집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테니.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내 미래의 집'을 꿈꾸며 내 집에 반영하고 싶은 나만의 가치를 하나씩 찾아나가는 그 과정만으로 지금은 즐겁다.
나의 '미래의 집'에 대한 이상은 스웨덴에 오고 조금씩 바뀌었으며 또 조금은 구체화되었다. 스웨덴의 여러 집들을 보고 또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답을 찾아나가며 내 미래의 집도 그 형태를 차차 갖추어 나가고 있지 않나 싶다. 스웨덴의 집과 내 미래의 집, 각각의 가치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맥을 함께 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의 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스웨덴의 친구들과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선 첫 번째는 우리와 똑같이 10년간 무섭게 치솟은 집값으로 '내 집 마련'이란 정말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서울의 집값이 다른 지방에 비해 훨 비싼 것처럼 스톡홀름 또한 집값이 더 비싸기 때문에 스톡홀름의 젊은 친구들에게는 렌트가 훨씬 익숙하고 또 안전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동시에 그들이 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름 별장과 정원에 둘러싸인 단독주택이다. 한국의 '집'과 같은 스웨덴의 'Hus'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런 초록에 둘러싸인 단독주택에 가깝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대적인 편리함이 없는 오래된 주택에서의 단순한 삶에 대한 다소 낭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듯 아파트에 살면서도 한 번쯤 전원주택을 꿈꿔보는 우리네 삶과 닮아있지만 많은 사람(부모님)들이 작은 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는 이 곳에서는 우리보다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싶다.
스웨덴의 주거공간 디자인에서 가장 중시되는 부분은 '심플함'과 '실용성'이다. 특히 '실용성'에 있어서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실용적인'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스칸디나비안 인테리어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하얀 벽'은 언뜻 생각했을 때는 매우 실용적이지 않아 보인다. 우리에겐 더러워질 위험이 많은 화이트에 대한 공포가 항상 있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실제 스웨덴의 집에서 하얀 벽은 그와 반대로 매우 실용적인 이유로 존재한다. 모두 알다시피 북유럽 스웨덴의 겨울에는 일조량이 굉장히 적어진다. 스웨덴의 인테리어가 발전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추운 겨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스웨덴 사람들은 어둠이 긴 겨울 동안 항상 햇빛을 쫓아다닌다. 추운 겨울에도 식당 테라스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고 벤치에 앉아 짧은 낮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자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그들은 밝은 빛을 반사시키고 집을 밝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하얀 벽을 사용한다. 흰 벽이 있기에 햇빛도, 실내 조명도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뿐만 아니라 어떤 디자인, 어떤 색상의 가구든 이질감 없이 배치할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하얀 벽이 실용적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집을 밝게 만드는 흰 벽 외에 스웨덴 인테리어가 가지는 또 하나의 가장 큰 특징은 은은한 간접 조명이다. 사실 처음 이 곳에 와서 내가 가장 적응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은은한 주황색 조명이었다. 천장에 달린 흰색 형광등에 익숙했어서 그런지 천장에 달린 메인 조명이 없는 것(있는 집들도 있다)에 일단 놀랐고 조명기구들이 모두 은은한 주황빛을 내고 있어 뭔가 어색했다. 지금은 이 은은함에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이 조명 아래서 어떻게 책을 읽지 생각하기도 했다. 스웨덴 집에 이런 은은한 빛을 내는 간접조명들을 많이 쓰는 이유 또한 실내에 머무르는 밤 시간이 긴 이 곳에서에 편안한 느낌을 주고 눈에 강한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스웨덴 인테리어의 실용성을 이야기할 때 IKEA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이케아는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된다. 스웨덴 사람들과의 대화 중 이케아에 대해 극명하게 나뉘는 선호를 보며 흥미롭다 생각한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다. 이케아가 낮은 품질의 모조품을 찍어내어 판다는 비판과 누구나 살 수 있는 저렴함과 어디에 놓아도 조화로울 수 있는 깔끔한 디자인을 갖춘 제품들을 판매한다며 옹호하는 사람들, 이 둘로 나뉘는 반응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IKEA의 지향과 제품들을 옹호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그들 중 이케아의 가구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만큼 IKEA는 이미 스웨덴 생활 속에 깊에 뿌리 박혀 있다. IKEA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IKEA가 나타내는 가치는 스웨덴 사람들의 가치와 이미 닮아있다. 누구나 살 수 있는 '평등'한 가격과 누구나 스스로 조립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가구. 평등과 독립성은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먼저 꼽는 스웨덴의 가치이다. 한 마디로 IKEA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구의 디자인과 품질을 떠나서 그 브랜드가 품고 있는 가치만으로도 이미 스웨덴의 가치를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 곳에서 종종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을 위한 아파트에도 놀이터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도 여기서 놀라는 건가?'하는 어이없는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 곳에 살다 보니 왜 모든 빌라에 놀이터가 갖추어 있는지 알 것도 같다. 일단 대학생들도 학교를 다니는 중 파트너와 아이를 가져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가져도 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이후 학업을 이어나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나라에서 이를 육아휴직으로 보아 지원금을 준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학업에 방해가 되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 놀이터에는 가족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곳의 가치와 긴 겨울이라는 계절적 제약을 뛰어넘어 아이들을 항상 밖에 데리고 나가 야외에서 뛰어놀게 하는 문화가 반영되었다. 지난겨울 내가 사는 학생 아파트 바로 앞에도 아주 큰 놀이터가 생겼는데 어디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두들 뛰어나와 노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는 이렇게 가족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 집뿐만 아니라 집 주변, 동네로 넓혀진다.
정원을 가진 집을 꿈꾸는 것은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초록의 정원이 있는 집에 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정원 대신 식물이 가득한 집을 꾸미기 시작한다. 스웨덴에서도 한국처럼 잎이 큰 식물들로 집을 채우는 것이 트렌드다. 식물이 들어찬 공간은 훨씬 싱그러워진다. 스웨덴 집들의 큰 창과 발코니는 해가 간절한 스웨덴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한 구조이자 일종의 도시 정원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이 곳의 아주 작은 빌라들도, 학생 아파트들에도 모두 개인(혹은 공동)의 작은 야외 발코니들이 있다. 이 곳 발코니가 한국 아파트의 베란다와 다른 점은 집과 분리된 완전한 야외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론 겨울에 이 공간의 쓰임은 확실히 줄어든다. 그럼에도 커다란 정원이나 잔디는 없지만 해가 드는 나만의 작은 테라스를 가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작은 테라스에서 현재의 행복을 찾으며 미래 자신만의 작은 정원을 계획하고 있다.
사실 스웨덴에 오기 전 나는 집이나 인테리어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지금도 집을 꾸미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스웨덴에 살며 확실히 집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스웨덴의 겨울 동안 집에서 보낸 시간이 전보다 월등히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어둡고 추운 이 곳의 겨울은 내 집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 집이 단순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을 넘어서 나의 가치를 반영하고 또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 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집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은 또 가족인데 가족의 가치를 가장 높게 놓는 이 곳 스웨덴 사람들은 집이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맞는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그들의 믿음은 집 안 곳곳, 때로는 집을 벗어난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나 또한 혼자 살던 때와는 달리 함께 사는 가족이 생겼으니 점점 우리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함께 대화하고 서로에게 맞추어가며 미래의 집을 채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꿈꾸는 미래의 집이란 어느 동네의 어떤 크기의 어떤 구조를 벗어나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 집'이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